어둠 저편에서 무언가가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른거리는 실루엣을 본 것인지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어떤 소리를 들은 것인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를 피부로 느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가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해지고 잡히는 형체 없이 부유하던 것이 마침내 의식의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까미유는 그것이 아침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끄러워.”
까미유는 거칠게 자명종을 껐다.
너를 부르는 소리
까미유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밝은 뒤였다. 영 개운하지 못한 잠자리였다. 온종일 꿈속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느낌에 시달렸는데 그것이 깊은 잠을 방해했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은 채 문득 내려다보니 사명을 완수한 듯한 자명종이 침대 밑에 떨어져있었다. 다시 잠들기 전에 알람을 끈 것은 기억이 났지만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 뒤로 바로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피곤하군.
까미유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자세를 바꿔서 반대로 엎드렸다. 밝게 침투해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베갯잇에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숨결 때문에 숨쉬기가 불편했지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꿈에 시달렸기 때문인가 싶었다. 정작 그 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전혀 없다는 것은 신기했다. 그 정도로 시달렸다면 기억에 남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까미유는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모호한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꿈은 어디까지나 꿈.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발을 딛을 때가 임박했다. 사람을 기다려주는 시간은 없다는 것을 까미유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침대에서 내려가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까미유는 바닥이 푹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문을 모른 채 저절로 주저앉아버린 까미유는 곧 바닥이 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단지 그의 발바닥이 바닥에 닫지 않은 채로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이유를 까미유는 곧 앞에 놓여있던 거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닥터……? 정말 닥터인거야?”
“그래.”
까미유는 생각에 열중하느라 짧게 대답했다. 미쉘이 묻는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적어도 정체성은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의 정체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육체는 좀 애매했다. 분명 자신의 몸인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겉모습은 스물 네 살의 청년이 아니라 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목소리도 달라져서 미쉘에게 대답하면서 까미유는 스스로 놀라서 입을 닫아버렸다. 대답이 짧았던 이유는 생각에 열중했던 것보다는 이게 더 정확할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왜 갑자기 어렸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에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닥터?”
“그만 좀 불러!”
까미유는 미쉘이 부르는 소리에 살짝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평소답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바로 미쉘에게 사과했지만 기분은 더욱 안 좋아졌다. 꿈에부터 계속 시달렸던 느낌이 다시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면서 전율이 일었다. 마치 온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온 몸을 뒤덮었다. 벌레는 항상 그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런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 자체에 위화감이 들었다. 까미유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쉘은 그런 까미유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그의 맨 눈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익숙한 감정을 느낀 미쉘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닥터, 어젯밤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어젯밤?”
까미유는 미쉘에게 되물었다. 미쉘은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얼굴로 되묻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것이었을 텐데. 아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건.
“어제 히카르도 바레타를 죽였잖아.”
까미유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쉘의 음성을 듣는 동시에 어젯밤의 기억이 무서운 속도로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지나가는 기억의 단면들이 이어지면서 까미유는 어떤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히카르도와 그런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흰색의 남자가 보였다.
잘 가. 히카르도.
그렇게 속삭이는 자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까미유는 잊고 있었던 다른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헐렁해진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 곳에 남아있는 선명한 상처를 확인했다. 그것은 벌레에라도 물린 것 같은 조그마한 상처였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모기에라도 물린 거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그런 상처였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남겨진 것인지, 누구에 의해 남겨진 것인지에 대해서 까미유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떨려오는 몸을 애써 일으켜 세워 거울로 다시 달려갔다.
그 곳에는 여전히 열여섯 살 때의 까미유가 서 있었다. 열여섯 때 처음 히카르도에게 의해 남겨졌던 상처. 히카르도의 벌레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만약 그렇게 해서 히카르도가 가진 불멸자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어떻게 자신의 몸을 헤집고 다니던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식도 효과는 없었고 그 뒤로 히카르도와는 결별했다.
그 뒤로 잊고 있었던 팔 년 전의 기억이 의식의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까미유는 깨달을 수 있었다. 꿈에서부터 시달려왔던 느낌, 누군가가 부르는 것 같다는 모호한 느낌이 이제는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해졌다.
까미유.
히카르도의 목소리는 그가 옆에라도 서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까미유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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