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일상
언제부터였을까,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은.
마나미는 두 발을 페달에서 떼었다. 페달을 밟지 않고 브레이크도 잡지 않은 채 그는 내리막길을 탔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사진 길을 굴러가는 자전거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마나미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느낀다는 것은 보는 것과 다르다. 눈을 감고 시각을 차단하면 비로소 모든 것이 느껴진다. 상기된 뺨을 타고 지나가는 한 줄기의 바람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있는 힘을 다해서 페달을 돌렸다. 그리고 오르막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내리막길은 이를테면 보상 같은 것이었다. 페달에서 발을 땐 채 자전거에 몸의 중심을 맡기고 내려가면 아찔함과 동시에 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는 이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중심이 잡혔을 때, 마나미는 손잡이를 잡고 있던 두 손마저 놓았다. 이제 그를 자전거에 붙어있게 하는 것은 안장과 프레임에 걸친 다리 힘이 유일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흩뜨린다면 그대로 넘어질 것이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가속이 붙은 자전거에서 낙차한다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나미는 멈추지 않았다.
위험에 자신을 내던질 때야 말로 그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그래서 바깥활동은 자주 할 수 없었고 학교도 자주 결석했다. 다행히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학업은 그럭저럭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면서, 시계의 세 바늘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보면서 마나미는 허무함에 휩싸이곤 했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고, 오늘은 또 다시 한 것이 없었다. 만약 평생을 이렇게 보내게 된다면 자신은 왜 태어나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원망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그 순간 마나미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은 것은 텅 비어버린 무언가였다. 공허하고, 그리고 두려웠다. 이대로 사라질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서러워서.
자전거 같은 거 내가 탈 수 있을까?
소꿉친구가 처음 자전거를 권했을 때 처음 내뱉었던 말을 마나미는 아직 기억했다. 여태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불신,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이 끝없이 회의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달리기 시작하자 곧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기분 좋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달리면 당장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해지고, 아무런 걱정도 필요 없었다.
자전거를 타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리니까. 그래서 좋은걸.
어릴 적 침대에서는 항상 과거를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살았다. 지금을 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때만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떤 때보다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위험하게 타면 탈수록 그 느낌은 더욱 선명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마치 저 앞에서 유혹하는 손길처럼 다가오는 그 느낌은 좀처럼 마다할 수 없는 것이었고 계속해서 쫓아가게 되었다. 죽음에 가까워질 때야 비로소 느껴지는 삶은, 정말로 모순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중독된 걸까, 자전거에.
마나미는 슬며시 웃었다.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확실히 지금처럼 계속 자전거를 타다가는 언젠가는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몸이 자전거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자꾸 타면서 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지금 이 순간에 살아가는 그 느낌을 느낄 수 없었다. 그 느낌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는 다시 몸을 익숙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위험하게, 낙차를 간신히 면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내몰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다시,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손짓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나미, 그렇게 자전거 타면 위험하다고 몇 번 말하지 않았던가?”
“아-토도 선배.”
어느덧 끝나버린 내리막길을 아쉬워하려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다그칠 듯 이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자전거를 끌고 오고 있었다. 그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다. 마나미보다 훨씬 앞서서 내리막길을 주파한 토도는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마나미가 지나치게 자신을 위험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그렇게 주의를 주곤 했다. 그래도 마나미가 듣지 않을 땐 지금처럼 야단을 쳤다. 그러면 마나미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다음부턴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는 후배를 못마땅해 하는 선배가 한 명, 그렇게 잔소리 하는 선배에게 여전히 웃고 있는 후배가 한 명.
이것 역시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하나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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