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뒤쪽의 세계
닥터는 선글라스를 벗는 일이 거의 없어. 나라면 눈앞의 장막 같은 게 답답해서라도 벗어버릴 것 같은데 말이지.
-출처 미상-
누군가에게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이유에 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자주 같은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기억나는 것에 한해서는 두, 세 번 정도. 같은 질문을 그 정도로 받았다면 스스로에 관해 돌아보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선글라스의 한 귀퉁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에 관해서는 어떻게…나온 게 있습니까?”
“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중에 난데없이 질문을 받았다. 의식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었고 살짝 웃으면서 반문하면 상대가 다시 설명해줄 것이었다. 예상대로 상대는 다시 거래 내용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단조롭고 사근사근하게 이어지는 그의 설명을 배경음으로 삼아 다시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렸다. 안경을 만지는 촉감은, 생각보다 낯설어서 재미없는 그의 설명보다 더 마음에 쏠렸다. 사실 이번 회의는 연구 후원과 관련해서 비즈니스적인 관계 때문에 반은 억지로 참석한 것이어서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흥미를 끌만한 것은 없었다.
안경을 만지기 위해 손목을 가볍게 움직이면 들리는 옷자락 소리도 듣기 좋았다. 시선은 선글라스 너머의 상대에게 맞춘 채로 나는 계속 다른 것에 정신을 쏟았다. 검은색으로 음영이 진 세상에서 흑백에 가까워진 남자가 무어라고 계속 떠들고 있었다. 집중을 그다지 하지 않아서 머릿속에서는 문장이 띄엄띄엄 처리되었지만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차피 이미 연구소를 나오기 전부터 숙지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혹시 다른 무언가를 사석에서 얘기라도 할까 하여 가진 시간이었지만 그럴만한 의도가 상대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고 말과 말 사이에서 유추해야하는 숨겨진 무언가도 없었다. 재미없는 상대였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요지는 결과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으면 곤란하시다는 것이로군요?”
“아무래도, 영리적인 목적이다 보니……. 그런 게 좀 있습니다.”
상대방이 겸연쩍게 웃는 것이 보였다.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을 구성하는 근육의 움직임으로 그의 의중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까? 통계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아마 모를 것이고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그의 앞으로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여태까지의 연구 성과를 요약한 보고서 형식의 문서였다.
“이 정도면…만족하실까요?”
최대한 나긋한 어조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그의 눈이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것을 관찰했다. 그의 평균적인 읽기 속도를 감안해서 그가 어디서 눈을 멈추는 지, 어디서 다시 시선을 옮겼는지, 어느 부분에서 눈동자가 흔들렸는지,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그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가 이번 연구에 후원을 해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놀랍군요, 놀라워. 벌써 이 정도의 성과가 있다면 가능성이 충분해 보입니다. 선생님, 당신의 연구에 후원을 하도록 하지요.”
언뜻 보기에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상대로부터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딱히 물고 늘어질 거리는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순수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서 눈빛만으로는 어려보이기도 했다. 아이의 완전한 순수함과는 거리가 있는 감정이 섞여 있겠지만.
“근데 선생님은 그 선글라스,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여기 안도 상당히 어두운데.”
“아, 이거요…….”
다시 선글라스로 돌아온 화제에 나는 목적 없이 웃어버렸다. 그는 알기나 할까? 그가 여기 들어와서 약 반시간이 지난 뒤로 내게 있어서 중요한 화제는 죽 선글라스였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왜냐하면, 지루함으로 가득했던 내 두 눈은 선글라스 뒤에 있었기 때문에.
대답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상대의 투명한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서글서글했다. 앞으로 더 이상 그와는 볼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을 고하는 눈은 여전히 짙은 선글라스 뒤로 숨긴 채 나는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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