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감는 여인의 그림이 있을 곳

 

 

 

 

이건 여기다 두는 게 좋겠군.”

아뇨, 여기다 두는 게 조금 더 나아 보이는데…….”

하나의 사안을 두고 두 남자의 의견이 어긋났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서로 양보해서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사안에 어떤 가치관이 끼어들어간다면 복잡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기는 옳고 그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데는 정해진 기준이 없다.

아니, 아무리 봐도 이 족자가 있을 곳은 여기다.”

아니, 여깁니다.”

이번에는 두 남자의 눈이 맞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족자는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두 남자의 손을 바쁘게 오고 갔다. 그러니까, 일의 발단은 시장에서 괜찮아 보이는 그림을 발견한 것부터 시작했다. 유명한 화백이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정감이 가는 그림이었던지라 법정은 한동안 그것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그림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여태까지 대했던 것이라고는 죽간에 새겨진 글자뿐이었다. 그것 역시 필체에 따라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점에서는 그림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림을 감별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런 법정의 눈에도 이 그림은 무언가 심신에 안정감을 주었다. 어여쁜 낭자 한 명이 내천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피곤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 번씩 눈길을 주고 싶어지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살 건가요?”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법정은 그러고 보니 자신이 혼자 장터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식재료를 살 것이 있어서 그는 장터에 갈 일이 생겼다. 보통은 자신이 사러오지 않겠지만 이번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생겼다. 하지만 한 번도 장을 보러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일가견이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을 끌고 왔다. 그것이 서서였다. 그는 생각보다 먹는 걸 좋아했는데, 가끔 보면 자기가 만들어 먹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그를 장터로 데리고 왔다. 식재료에 관해 잘 아는 것은 아낙네들이겠지만 여자를 대동하고 장터를 거니는 것은 익숙지 않았던 법정이었다.

생각중이다.”

지금 산 것도 충분한 것 같은데…….”

서서는 식재료가 들어있는 자루가 풀어지지 않도록 입구로 쏠린 무게를 다시 뒤로 보냈다. 양 팔에 각각 안고 있는 자루가 꽤나 무거웠다. 대체 이 많은 식재료들을 어디에 쓸 생각인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왠지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았고, 본인의 동의도 없이 무작정 데려온 걸 보면 아마 말하기 어려운 사정일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차출된 데다가 어째서인지 짐은 자신이 전부 들게 되었다. 이 정도라면 불평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 돈은 충분하니까.”

그 말이 아닌데. 서서는 혀끝에서 맴도는 말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 법정이 악의적으로 모르는 척한다기 보다는 서서가 짐이 많다는 것을 정말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무겁긴 했지만 못 들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서서는 왈가왈부하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잘못은 어쩌면 짐이 무겁다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괜히 쓸데없이 말했다가 남을 배려도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서서는 법정이 눈여겨보고 있는 그림을 슬쩍 보았다. 그 역시 그림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따뜻해 보이는 그림이었다. 단순히 먹으로 칠한 그림이라 많이 조악해보였지만 느낌이 좋았다. 문제는 그림에 그려진 낭자가 조금 노출이 있다는 것 정도일까. 그 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느낌이 좋았으므로 그 그림은 결국 사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림을 걸어두기 위한 장소로 법정이 선택한 곳이 문제였다. 자주 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잘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내천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여자의 그림 아닌가. 느낌이 좋긴 하다지만 대놓고 걸어두기에는 남사스러웠다. 그러니까, 노출이 있는 여자의 그림이므로-

역시 눈에 너무 잘 띄는 곳이 두는 것은 좀 지양하는 게…….”

서서는 좀 더 확실히 의견을 말하기로 했다. 어쩌면 아까 장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확실하게 뜻을 전달하지 못해서 그가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은 서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가 말했다.

애초에 이 그림을 저열한 목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닌데 왜 그렇게 해야 하지? , 그린 사람이야 어떤 마음에서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면 더 저열해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 안 드나? 당당하게 드러내.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려고 하지.”

하지만 괜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이해심이 깊은 건 아닐 테니까요. 물론 그림이 좋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럼 그게 그 사람의 한계인 거겠지.”

그런걸까요. 하지만, 남에게 오해를 받게 되면…….”

서서는 잠시 말을 끊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여태까지 법정과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한번쯤 그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그와는 너무나 다른 법정에게 한번쯤은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서서는 뭔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는 여태까지 많은 감정을 억눌러왔다. 누군가 자신을 오해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묻는 순간 그것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게 되면 억울하지 않나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누군가가 내 진짜 모습을 알아줄 거고 이해해 준다면-”

법정은 서서를 바라보았다.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 무언가에 항상 짓눌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법정은 사실 잘 몰랐다. 서서와 자신은 무척이나 달랐으니까. 하지만 질문에 대한 법정 자신의 답은 해줄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그게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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