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향 *

옥중대면

 

 

“으윽…….”

눈을 뜨는 것이 힘들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깨어나 보니 내가 모르는 장소에 와 있었다. 나무가 썩으면서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따가운 짚더미가 얼굴을 찌르는 곳. 문득 낡은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이곳이 어딘지 알게 되었다. 예전에 갇혀본 적이 있는 옥중에서도 이런 냄새가 났다. 이곳은 감옥이었다.

“으…….”

몸을 일으켜 세우는 와중에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쑤셨다. 낙마라도 했던 것일까. 겨우 일어나 앉아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억을 좇아 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조조군으로부터 도망치던 유비님. 그리고 그를 따라가던 굶주리고 피폐한 백성들. 아아, 그러고보니 나도 그 곳에 있었다. 공명이 선방을 맡고 조운공과 내가 백성들을 어르며 후방에서 분발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진군은 생각보다 훨씬 느려서 조조군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령의 보고가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래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당신이 서복인가?”

위의 책사라는 그는 내 옛 이름을 불렀다. 그는 대담하게도 자신을 호위하는 군사 몇 명만을 데리고 나타났다. 아무래도 가장 날랜 군마들을 골라서 타고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수는 적어도 다들 정예병 복장을 하고 있었고 책사의 옆에는 외눈의 장군이 위협적인 자세로 기백을 과시하고 있었다. 위의 장군 중에 외눈이라고 하면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후돈 원양. 그는 조조의 친척으로 무술 실력으로 그를 당해낼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내가 격검으로 손을 가져가자 하후돈의 옆에 있던 책사가 손을 내저었다.

“이런,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설마 하후돈 장군을 상대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무리 영천에서 소문난 격검의 명수라고 해도 그건 무리가 아닐까? 우리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우스운 얘기였다. 비록 수는 적지만 병졸들과 장군까지 대동하고 평화롭게 해결하자니. 하지만 이쪽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패는 그가 쥐고 있었다.

“당신 어머니는 우리가 모시고 있어.”

“그게 무슨…….”

그 말이 사건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내가 유비군을 떠나 조조군에 합류한다면 어머니도, 나의 주군도, 친우도 모두 무사히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옛, 주군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일침을 가했다. 그의 말인 즉슨 일촉즉발의 상황에 아군을 버리고 적군에게 귀의하라는 뜻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평정심을 잃어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결국 나는 조조군에 투항했다. 하지만 조조군의 추격은 멈추지 않았고, 어머니도 그 곳에 없었다. 내가 속았던 것이다. 모두 다 적의 계략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속은 내게도, 나를 속인 적에게도 분노가 치밀어서 다짜고짜 그 책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몸싸움이 있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떠올랐다.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직도 피가 마르지 않은 상처였다. 꽤나 거칠게 날뛰었던 모양이었다. 지푸라기에 찔린 상처가 쓰라려서 다른 손으로 상처를 감싸려고 하니 그제야 양 손을 구속하고 있던 곡(梏)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한 것이 있다면 속은 쪽이 아니라 속인 쪽 아닐까. 두꺼운 나무판에 나있는 구멍에서 손을 빼기 위해 손목을 비틀어보았지만 거칠게 깎아낸 나무 표면 때문에 긁힌 상처만 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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