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님의 리퀘로 받았던 글입니다.

 

소나기

*진삼국무쌍 IF루트*

   

 

백약은 앞으로가 기대되는 인재입니다.”

요즘 따라 공명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생겼다. 얼마 전에 촉으로 귀화한 위나라의 젊은 장수에 대한 이야기다. 강유 백약이라고 하는 그 청년은 원래 천수군의 호족 출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가 어릴 때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시고 어머니가 양육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많이 위한다고 들었다. 나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와 매우 다르기도 했다. 그 역시 가족이 위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위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다. 나 역시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는 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세상에서는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를 불효하다 욕하는 이들도 있었고 뜻을 품고 나아가는 기상을 칭찬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감탄했다.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그는 천수군의 이름 있는 장수였고 주변 상황에 마지못해 촉에 투항한 후에도 스스로 나아갈 길을 잘 찾아갔다. 똑 부러지는 청년이라고 하면 적절한 것일까. 그의 그런 면이 공명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요즘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백약이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하, 그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봐.”

그러게 말일세. 칭찬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자네라서 더욱 놀랍군. 확실히 그 젊은이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점이 있긴 하지. 나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네.”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사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공명은 방통의 지적이 조금 쑥스러웠는지 헛기침을 했다.

, 아직 젊은 나이라서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아직 젊기에 기대된다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여러모로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뒤로 빼면서도 기대는 숨길 수 없나보군.’

나는 공명이 그 젊은이에게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 순수함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기대를 하는 사람도, 기대를 받는 사람도 좋든 싫든 그 감정을 기반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게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이 순간 걱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원직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공명이 내게 물음을 던졌다. 나는 그에게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이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평가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 둘 사이의 순수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솔직히 염려되는 바가 있었다. 사실 공명이니까 그런 걱정은 사소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승상, 여기 계셨군요.”

내가 막 입을 떼려고 할 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쪽에서부터 뛰어오는 모습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더니 지금 막 입에 오르내리고 있던 장본인이었다. 강유 백약, 그가 공명을 찾아 온 것이다. 이미 업무는 끝난 시각이었기 때문에 공명은 그가 찾아온 것이 의아한 듯 했다. 강유는 공명 앞에서 단정하게 자세를 잡고 섰다.

친우 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다만 이것을 놓고 가셨기에…….”

강유는 공명의 앞으로 우산을 하나 내밀었다. 그것을 보더니 공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만. 승상부에 있던 가요?”

? , 그런……. 전 당연히 승상님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예상치 못한 전개에 강유가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는 당황하면 귀가 붉게 달아오르곤 했는데 지금 그의 귀는 마치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갰다. 그는 괜한 일로 이야기를 방해해서 죄송하다며 연거푸 사과했다. 그렇게 죄송할 일은 아니었는데, 아마 아직 여러모로 주변 사람들이 어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위에서 귀화한 출신이지만 승상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조금은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왠지 그는 나도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근데 비가 오는 것 같은걸.”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원이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공명과 나도, 강유도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미약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세찬 빗줄기로 변했다. 예고도 없이 내리는 비에 강유를 비롯한 우리 셋은 술상이 차려진 정자에 고립되었다.

뭐 이렇게 됐는데, 넷이서 비가 그칠 때까지 마시다가 돌아가도록 하지.”

어째 원했던 전개인 것 같은데.”

슬쩍 그를 찌르자 사원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챙이 넓은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물론 그냥 해 본 말이었다. 사원이 마음대로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의 의도일 리는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대로 정자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을 나간다고 해도 몸 상태에 무리는 없었다. 사원도 다른 의미에서 안심되었다. 걱정되는 것은 공명이었다. 그는 매일 격무에 시달리는지라 웬만하면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괜히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지면 곤란할까 싶었다.

그거 괜찮네요. 괜찮은가요, 백약?”

공명은 아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강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공명의 옆자리에 앉았는데 둘이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태어나고 자란 곳은 완전히 다르지만 젊은 나이에 주변의 기대를 받고 제 앞길을 개척해나간다는 면모가 어쩐지 닮아있었다.

비는 곧 그칠 겁니다.”

공명이 짧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 지나가는 소나기였기에 길게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강유가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해서 우산을 가져온 마침 소나기가 내려주었다는 게. 덕분에 이렇게 넷이서 예정에 없던 술자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참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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