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병아리

 

 

 

[이 쪽도 끝난 것 같아.]

[좋아, 그럼 일단 오늘은 이만 해산하자.]

미쉘과 짧게 통신을 끝낸 까미유는 방금 전 까지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현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주변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녹색 형광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았다. 광범위하게 능력을 쓴 흔적이었다. 까미유는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잔상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을 생각이었다. 현장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것은 상황과 여유가 허락하는 한 그가 종종 하는 행동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적막감, 믿을 수 없는 고요함이 그는 마음에 들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식어가는 열감, 끝난 뒤의 안도감, 뒤늦게 오르는 희열과 같은 감정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그는 무방비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위기감이 충만했던 곳에서 맛보는 여유란 달콤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마치 방금 전에 지나갔던 상황을 마음껏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여유롭게 거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한 명상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까미유는 귓가를 간질이는 익숙하고도 낯선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 소리의 정체를 쉽게 감 잡을 수 있었다는 것에서 그랬고 낯설다는 것은 그 소리가 들릴 장소로 이곳은 영 부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까미유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아리?”

그는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고 눈앞에서 목격된 작은 생명체를 보고는 눈살을 잠시 찌푸렸다. 어둠 속에서도 작은 몸집을 놓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 몸 주변에 반딧불의 잔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치료가 된 건가.’

까미유는 가느다란 소리로 울고 있는 병아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벌레들은 보통 범위 내에서 그가 목표한 상대들만을 치료한다. 불특정 다수를 치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존재조차 알고 있지 못했던 병아리가 치료되었다는 것은 의아했다. 하지만 문득,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눈가에 스쳤던 병아리 시체가 생각났다. 왜 이런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잠시 생각했었고 곧 전투에 들어갔다. 싸움이 격렬했기 때문에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작은 존재를 다시 기억해낸 까미유는 몸을 굽혀 병아리를 주워들었다. 무의식중에 계속 병아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의식이니까 결국에는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것이겠지만 까미유는 다시 회복되어 쌩쌩하게 삐약대는 병아리를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처음에 시체인 줄 알았던 것이 잘못 본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벌레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는 있어도 이미 죽어버린 생명을 살릴 순 없었기에.

보통은, 치료를 해 준 상대에게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치료를 해주는 것 까지가 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혹여 책임을 지고 싶다고 해도 앞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책임을 지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까미유는 생각했다. 물론, 겉으로 그런 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는 의사였으므로 그에게 책임감을 원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렇게 보이도록 응해주었다. 그래서 병아리를 품에 안고 가면서도 까미유는 마음에 미묘하게 동요가 일었다.

 

집에 도착해서 그는 병아리에 관해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보았다. 수의학이나 가축학이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병아리의 생리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병아리는 죽기 쉬운 가녀린 생명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료에는 병아리들이 체온 유지에 아직 익숙하지 못하므로 혼자 키우면 저체온증으로 죽게 될 확률이 많다고 쓰여 있었다.

저체온증이라. 그럼 혼자 키우면 안 되는 건가.’

까미유는 일어서서 옷걸이에 걸려있던 그의 코트를 다시 집어 들었다.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병아리들이 한 아름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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