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들의 도시 AU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밤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려서 깨지 않았더라면 시간조차 몰랐을 것이다. 마치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미약한 빛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미약한 밝음마저 사라지고 새카만 어둠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어젯밤 늦게까지 책을 본 것 때문에 눈에 피로가 미처 가시지 못했기 때문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눈꺼풀이 들춰지고 갑자기 내리쬐는 햇빛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눈부심조차 없었다. 그저 시커먼 어둠이 온 사방에 펼쳐진 듯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알고 있는 의학지식을 최대한 동원해서 원인을 생각해보았다.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는 경우가 무엇이 있을까 최대한 머릿속을 뒤적여 보았다. 갑작스러운 혈압의 상승, 눈의 외상, 시신경 회로의 손상과 같은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것으로도 지금 내 상태를 정확히 진단내리기는 어려웠다.
“이봐!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갑작스럽게 밖에서 들려온 호통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소리가 들려온 것은 안이 아니라 바깥, 즉 나한테 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력이 손상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는 원인으로 눈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눈이 갑자기 보이질 않아-
무슨 개소리야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당황해서 혼잣말로 읊조리는 소리가 왠지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손을 더듬어 겨우 수화기를 들었다. 조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가 들리길 고대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미 나와 있을 시간임이 분명함에도 이상하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원인 미상의 시력 상실을 호소하는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시력을 잃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시는 마치 죽어버린 것처럼 고요해졌다.
혹시나 하여 주변 사람들을 능력으로 치료해보았다. 하지만 환자들은 회복되지 않았다. 내 손이 닿아도 아무도 환희를 부르짖지 않았다. 다만 들려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 뿐. 효과가 없어요, 의사 선생님-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옆에 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치료를 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무력감 비슷한 것이 등과 어깨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온 몸을 침범당하는 듯 한 그 느낌에 나는 어깨를 떨었다.
이주일이 지났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여전히 시간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 규칙적으로 울리는 알람시계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집을 떠나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무법자들도 늘었다. 시력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이봐, 당신 기적을 행하는 의사라면서.”
그런 말을 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시력 이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거칠게 멱살을 휘어잡았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떻게 그렇게 위치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자 억지로 등을 벽에 붙여버렸다. 기분 나쁜 숨결이 코 근처에서 느껴졌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게 어때?”
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평소에 사이퍼로서 능력을 이용해 고치기 힘든 온갖 외상들을 고쳤다는 것을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내 소재를 알아냈는지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고 물을 기회도 없었다. 어쨌든 주변에 그런 소문을 퍼뜨리면 원인 불명의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자는 심산이었다.
“제 능력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의사 선생.”
그러니까 요지는,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었다. 단지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만 매달릴 사람들을 이용해보자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내 능력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져야 했다. 치료는 값을 비싸게 불러서 단 한번만 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되면 단 한 번의 치료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식으로 발뺌이 가능했고 여러 번 치료를 해야 낫는다는 말을 해서 돈을 계속 받아낼 수도 있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내가 굳이 옆집의 어린 소녀를 상대로 매일 치료를 해봤다는 사실을 말해야할 것 같지는 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좋을 대로 나를 이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후에 알게 된 바로는 이 같잖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두목 역시 사이퍼인 것 같았다. 시력이 없이도 다른 초월적인 감각을 이용해 움직임에 무리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몇 달이 지났다.
오늘도 환자를 몇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피곤이 극에 달해서 좀 쉬고 싶었지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미 이 정도로 했으면 내 능력이 듣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가능성이 절실했다. 나는 여전히 옆 짚 소녀가 조잘대는 소리를 들으며 그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어째서 소녀의 목소리가 내게 안심을 주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공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라서 그런 것일까 생각하고 다음 환자를 맞아들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내 능력이 쓸모가 없다는 소문이 퍼졌다.
누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옆집에서 조잘대던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더불어 사기꾼이라는 소문도 가미되어서 이제 내 집 앞은 항의하는 사람으로 가득해졌다. 차라리 잘 된 걸까 생각하는 와중에 건달패들이 집으로 몰려와 난동을 피웠다. 나는 갑자기 얼굴을 후려치는 느낌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비릿한 맛이 침과 섞여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건달패의 두목격인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예전에 치료했던 계집애 얘길 안 했지? 그 년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녀서 장사가 안 되잖아.”
글쎄-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라고 말하며 나는 슬며시 입 꼬리를 올렸다. 건달들 중 누구도 그 웃음은 보지 못했을 테지만 보복은 그대로 돌아왔다. 말초에서부터 전해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게! 우리가 만만해보여?”
의식이 희끄무레해지는 와중에도 무언가 날아오는 공기의 흐름은 느낄 수 있었다. 다음번에 엄습할 고통을 버티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다음 공격이 들어오는 간격이 길어졌고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느껴지질 않자 나는 조금씩 몸의 긴장을 풀었다. 왜 때리지 않는 거지? 게다가 주변에서는 이상한 소리도 났다. 윙윙거리며 무언가가 잔망스럽게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어떤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미유?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니. 머리도 온통 헝클어졌고 옷도 단정치 못하고. 너 답지 않다.”
“…….”
“소문을 들었다. 너에 관한 소문. 그래서 널 구하려 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여전히 빛을 가지고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 AU
-다른 시점의 이야기-
히카르도는 눈을 떴다. 오늘도 세상은 변함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눈이 부신 것 때문에 팔을 들어 시야를 가리자 멍든 것처럼 거무죽죽하게 변색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탄력을 잃어버린 피부 가죽 위로 튀어나온 혈관이 가느다랗게 서로 이어져 있었다. 솟아나온 부분에 이마를 대어보니 울컥거리며 피를 운반하는 혈관이 느껴졌다. 피가 흐르는 것은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오늘도 그는 살아있었다.
“슬슬…일어나야겠군.”
밖에서 자는 동안 정상 이상으로 내려가 버린 체온 때문에 몸의 감각이 둔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동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쓸데없이 내려가 버린 체온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죽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히카르도는 잽싸게 몸을 몇 번 움직여보았다. 처음에는 관절이 굳은 것 같이 이물감이 들었지만 무리하게라도 움직여보자 으드득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기 편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다리와 팔을 내지르면 지르는 대로 원하는 속도가 나왔다. 히카르도는 만족한 상태로 아침 운동을 끝냈다. 몸에서 열이 후끈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밖에서 귀청을 찢을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금속이 짓이기고 파편이 떨어져나가는 소리였다. 히카르도는 난데없이 소음이 발생한 쪽으로 눈을 돌렸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던 자동차 두 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한 쪽이 역주행을 한 모양이었는데 아침부터 역주행을 하는 것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더 이상한 사실은 평소라면 구경하러 라도 몰려왔을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거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좀 더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자 히카르도는 건물 외벽으로 생긴 그림자에서 나와 현장으로 향했다. 조잡한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일어나지 않는 운전자는 기절한 것 같았다. 맞은편에서 역주행을 하던 차의 운전자는 충격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의식은 있었다. 히카르도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이봐, 살아는 있나?”
“히익.”
처음에 히카르도는 운전자가 자신을 보고 놀란 것인 줄 알았다. 그런 일은 으레 있었으니까. 특히 괴기스럽게 변해버린 자신이 손을 봤다면 더욱. 하지만 다음 순간 운전자가 히카르도의 팔을 덥석 잡는 바람에 그는 흠칫 놀랐다. 무언가에 놀라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히카르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운전자는 불안한 것처럼 눈알을 굴렸다. 운전자는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것인지 계속 그의 팔을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
“도와줘요, 갑자기 눈이 안 보여요.”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이주일 정도 지났다.
히카르도는 되도록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며 다녔기 때문에 비교적 늦게 알게 되었지만 세상은 원인을 모르는 재난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 되었다. 보통 생각하는 원인은 경우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시력을 빼앗아가는 악마같은 무언가는 불시에 기습을 했고 갑작스럽게 어둠을 맞이한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거리를 활보했다. 평소라면 다들 집에서 나오지 않아 거리가 조용할 시간인데도 이젠 비척대는 장님들이 좀비처럼 새벽의 거리를 거닐었다. 그래서 히카르도는 예전보다 자주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다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차피 아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히카르도는 여느 때보다 시끌벅적해진 거리에서 고독감을 맛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멀쩡하지?’
히카르도는 쭉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 보았지만 답은 딱히 나오지 않았다.
까미유라면 알았을지도 모르는데-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 쯤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난의 한 가운데서 까미유는 멀쩡한가?
그에 관한 소식은 의외로 빠르게 입수할 수 있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까미유의 이름을 말하고 다녔다.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히카르도는 익숙한 이름을 거론하고 있는 이들에게 걸어가 말을 걸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히카르도의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지만 그가 단지 묻기만 했을 뿐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자 그 역시 정보에 굶주린 동지라고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마치 중요한 기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인데, 요즘 까미유 데샹이라는 의사가 이 불치병을 치료해주고 있대. 벌써 나은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
“그래?”
히카르도는 짧게 입맛을 다셨다. 그의 능력은 이런 국면에서도 기적을 일으키는가. 너는 언제나 사람들의 빛이 되는군. 히카르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인지 모르게 아쉬움이 밀려왔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빛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면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잠깐이나마 생각했다. 자신은 아직 시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눈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순간이나마 어렴풋하게 기대를 품었다. 까미유에게 자신이 필요했던 그런 옛날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히카르도는 쓰게 웃었다.
몇 주일이 지난 뒤 히카르도는 까미유가 일하던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집이 그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너는 내게 필요 없어.]
히카르도가 갇혀있던 유치장으로 면회를 왔던 까미유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까미유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고 그 둘이 마지막으로 한 대면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카르도는 머리가 텅 비어버려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목표라고, 그렇게 쉽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무언가가 그에게서 사라져버렸다. 멀어져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 모든 혐의를 수동적으로 인정해버린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상실감을 껴안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무언가라도 짊어지게 되면 공허해진 것이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죄를 짊어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히카르도는 곧 풀려났다. 왜 풀려났는지 그는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번은 돌아갔었다. 하지만 까미유는 이미 병원으로 발령이 나서 조직보다는 병원 일에 더 몰두하고 있었고 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일부러 그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완벽하게 돌아갈 이유가 사라진 히카르도는 조직을 나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나갔다는 이유를 대고 까미유도 조직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등을 돌리고도 이용할 땐 이용해먹는 까미유에게 히카르도는 뒤늦게 배신감을 느꼈다. 이미 허무함에 압도당한 탓에 격렬하진 않았지만 조용히, 그리고 착실하게 까미유에 대한 분노가 쌓여갔다. 하지만 분노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래서 까미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될수록 그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갔다. 정확히, 까미유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까미유와의 관계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히카르도는 그가 보고 싶었다. 까미유를 만나려고 했다면 어떻게든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그와 대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히카르도가 아직 종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까미유를 만나면, 그에게 복수할 건가 아니면-
아니면 다음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히카르도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그래서 그와의 관계를 예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히카르도가 오랜 시간 동안 망설여왔던 것을 제치고 까미유를 찾아가는 이유였다. 히카르도는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품었다는 사실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내심 까미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끝내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히카르도는 까미유가 난관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희열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왜일까? 자신은 까미유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다시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게 될 날을 쭉 그리워해왔다.
히카르도는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덩치 큰 녀석을 쓰러뜨렸다. 일단 시력이 없이도 움직이는 것에 무리가 없는 우두머리를 제거하고 나면 나머지는 떨거지나 다름없었다. 앞도 안 보이는 상태로 히카르도를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히카르도는 빠르게 건달패들을 정리한 다음에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까미유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가까이서, 다시 보게 된 친구의 추레한 모습에 히카르도는 쾌감을 느꼈다. 알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히카르도는 까미유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웠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는 까미유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히카르도는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까미유?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니. 머리도 온통 헝클어졌고 옷도 단정치 못하고. 너 답지 않다.”
“…….”
“소문을 들었다. 너에 관한 소문. 그래서 널 구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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