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대가

 

헬사렘즈 로트에서 살면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마치 원래 목표에서 빗맞히기라도 한 것처럼 죽음이 난데없는 경로로 그를 찾아왔다. 무엇을 맞히려고 했던 건진 모르겠지만 헬사렘즈 로트에서 인과관계는 너무 많이 흐려져서 죽음이 휘어진 경로를 추적할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고통은 없었고 오직 죽음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바닥에 흩뿌려진 식료품들과 그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가 차갑게 굳어가는 자신의 손을 세게 부여잡고 있었다. 죽지 말아요. 그 존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소음처럼 들렸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죽고 싶지 않아요. 남자가 내뱉은 말은 어차피 알아듣지 못하는 소음이 되어 흩어지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눈을 감았고 다니엘이 눈을 떴다.

아프다, 인마.”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쉰 목소리가 나갔다. 불필요한 소음이 뒤섞여서 목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다니엘은 뻣뻣하게 굳어있던 고개를 힘겹게 돌려 바닥에 흩뿌려진 혈흔과 그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안 볼 때도 되었는데 어쩐지 계속 보게 되는 존재가 되살아난 온기로 다시 유연해진 다니엘의 손을 세게 부여잡고 있었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지.”

그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프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얘기하는 게 더 들어맞는 것 같았지만 사소한 사항은 둘째 치고 그다지 맘에 드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아픈 건 좋아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아직 가시지 않은 어지럼증을 쫓아내며 스티븐과 좀 더 대화를 주고받았다. 제대로 대답하고는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대화를 이어가며 나른한 느낌이 얼른 가시기를 기다렸다. 되살아난 것은 오랜만이라 부활에 따르던 대가가 무엇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소음으로 왕왕대는 귓가에서 스티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렇다면 그 셔츠 입고 업무로 복귀하는 건 좀 문제가 될 것 같은데. 괜찮다면 내 집에 들렀다 가지. 셔츠는 충분히 있으니까. 코트는 없지만.”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셔츠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못 입게 되었으니 부하더러 사오라고 하면 되고 아니면 옆에서 계속 말을 시키는 이 남자를 옷가게로 보낼 수도 있었다. 자신을 위해 뛰어들어 목숨을 바쳤으니 셔츠 정도는 사다줄 테지. 사실 지금은 옷이고 뭐고 그냥 어딘가에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좋아. 근데 그냥 사다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군. 사이즈가 맞는 걸로, 흰 색이면 좋겠어.”

다니엘은 대충 떠오르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이상할 것 없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은 스티븐은 왠지 좀 곤란한 눈치다. 짐작이 가는 건 없었다. 판단을 다시 할 시간이 충분히 지났지만 끝까지 다니엘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자 스티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경위님 사실 이 말은 할까 말까 했지만. 셔츠랑 코트만 갈아입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아랫도리를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은데.”

. 다니엘은 스티븐의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랬다. 죽음은 살아생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놓아버린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 시절 이후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배변 실수를 다시 하게 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아무리 오랜만에 죽었다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죽는 무언가를 보는 도시에서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니. 다시 생각해 보면 간과했다기 보다는 나른한 정신 상태 때문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뛰어들기 전에는 이 점을 계산했던가 분명하진 않았다. 젠장. 망할. 이 상황은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하필 이런 실수를 한 것이 스티븐 앞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이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이 말이 없자 스티븐이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것처럼 웃으며 늘씬한 팔을 휘저었다.

괜찮아. 내 집은 여기서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고 HL에 사는 아주 민감한 존재들 눈에 띄지 않고 갈 수 있는 길도 있지.”

……얼른 안내해.”

다니엘은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이 쪽. 스티븐이 손가락으로 어두침침한 골목길을 가리켰다. 평소라면 시야가 좁아지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게 불편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밝은 빛을 받으며 걷는 것보다 안전하게 느껴졌다. 골목길로 들어선 후 몇 번인가 짜증날 정도로 길을 틀며 한 명이 겨우 걸어갈 수 있을 너비의 샛길로 들어섰다. 방향 감각에는 자신이 있는 다니엘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곳이 어디 인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에 관한 느낌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스티븐을 따라나설 때 속으로, 집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적이나 다름없는 경찰한테 알려주는 건 무슨 배짱인가 싶었지만 곧 스티븐이 그렇게 빈틈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도착했다며 발걸음을 멈추는 스티븐을 보고서야 그의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주변 풍경은 익숙했지만 아직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말끔한 원룸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이 어딘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스티븐은 그런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여긴 본가는 아니고 일이 있을 때 비즈니스용으로 쓰는 곳 중 하나긴 하지만. 일단 오피스텔 같은 곳이니 시설은 다 갖춰져 있지. 씻고 있으면 옷은 사올 테니까. 참고로 욕실은 저 쪽.”

알았어, 알았다고. 그 정돈 나도 알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 남자 입으로 굳이 말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다니엘은 짜증스럽게 말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스티븐이 나가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고 나서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재빨리 코트를 벗고 목만 남아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버렸다. 양복 안에 입고 있던 셔츠는 너덜너덜해져서 굳이 단추를 풀 필요가 없었고 웃옷을 벗을 때 이미 반쯤은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바지를 벗고 옷은 전부 구석으로 치워두었다. 샤워부스와 욕조가 모두 갖춰져 있었는데 다니엘은 부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샤워기를 틀었다.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줄기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고 있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한번 죽으면서 배출해낸 것들은 손쉽게 씻어 내릴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나중에 찾으러 가봐야겠다.”

다니엘은 샤워기가 뿜어내는 소음 속에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직 눈을 감고 있을 때 단 한 번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 다니엘을 빗나간 죽음이 애꿎은 목표물에 처박히는 순간이다. 죽음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대신 죽음만 튕겨내는 능력은 언뜻 보면 부활하는 듯 보이지만 실속은 야비하다. 살아나는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은 다른 이의 목숨이었다.

다니엘은 뉴욕이 붕괴되었을 때 한번 죽었고 그 때 능력을 얻었다. 그 때 죽기 직전까지 살아나려고 버둥댔던 기억이 지금은 희미하다. 다른 누군가와 목숨이 교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세 번째 죽음에서였다. 그 이후로 다니엘은 절대로 능력을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헬사렘즈 로트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그는 부하와 스티븐이 보는 앞에서 또 한 번 죽었다. 시야가 사라지기 직전에 부하를 봤었는지 스티븐을 봤었는지 기억이 애매했다. 어쨌든 그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은 죽기 싫다는 게 아니라 혹시 둘 중 한 명이라도 죽게 된다면-이었다.

HL로 온 이유도 능력을 믿고 온 건가?

아까 스티븐이 물었던 질문에 다니엘은 노코멘트, 라고 대답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건 대단해서 다니엘은 나중에 자신이 자연사라도 할 수는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워졌다. 죽음을 감수할 수 있다면 굳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필요가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내기에서 기회를 두 번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사기라고 볼 수도 있었다. 다만 세상에는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균형이라는 게 존재해서 한 명이 두 번 기회를 가지면 누군가는 한 번조차 선택할 수 없게 되고 두 번 기회를 쓴 사람이 버린 길을 가야한다. 다니엘은 죽음으로 죽음을 막아내는 이 능력을 남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헬사렘즈 로트에 경찰로 남아있는 이유에 관해서 묻는다면 과연 그 능력을 심리적인 방패막이로 삼지 않았는지는 모호했다. 사명감이라고, 자신이 남아있는 이유는 그렇게 규정하고 싶었고 그것은 확실하게 진실의 일부일 것이지만.

오래 걸리는군.”

시끄러. 옷이나 내놔.”

다니엘은 욕실 문을 조금 열고 손만 내밀었고 스티븐이 옷걸이에 옷을 걸 듯 그가 내민 손에 쇼핑백을 걸어주었다. 다니엘은 욕실 안에서 옷을 전부 입고 나왔다. 물론 받았던 쇼핑백 안에는 죽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옷가지들이 들어있었다. 생각보다 품격이 느껴지는 쇼핑백이어서 담기 전에 동작을 멈추긴 했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다니엘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뜨이는 침대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죽음이 남기고 간 피로감과 뜨거운 물에 녹아내린 몸을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었다. 욕실에서 잠들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엄청 자연스러운걸. 몇 번 와봤던 곳도 아닐 텐데.”

귓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웃는다. 저 남자를 살린다고 사람 한 명을 죽였는데 지금은 안락한 침대에 누워서 안도감에 휩싸여 있다. 왜 저 남자를 살리려고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현장에서 나누었던 대화에 이미 답은 세 가지나 제시해 놓았다. 그가 죽으면 곤란하니까.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라서 다니엘은 그냥 잠시 눈을 다시 감고 싶었다. 그가 방금 했던 행위와 무차별적인 살인의 다른 점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그래도 잠들기 직전까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었다.

다시는 내가 보는 앞에선 죽으려고 하지 마라.”

그렇군. 죽음의 대가 앞에서 어설픈 죽음을 선보이는 건 부끄럽지.”

진심은 아닐 테지만 차분한 어투를 빌려 빈정대는 것처럼 찔러보는 스타일은 스티븐다웠다.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라면 나중에 일어나서 얼굴을 한 대 후려갈길 테다. 다니엘은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죽음의 대가라는 건 있을 수 없어. 대가는 끊임없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탄생하지. 하지만 죽음은 반복할 수가 없어. 그렇게 하기 싫어. , 죽음의 대가는 정말 사양 한다…….”

죽음은 반복할 수가 없다. 그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언약이다. 어떤 언약이냐 하면,

이건 경고다. 빗나간 죽음으로부터 구해줄 수 없다. 나는 책임질 수 없어. 그러니까 알아서 도망치도록. 다음번에 혹시라도 내가 살아날 때 또 누군가는 죽을 테니까, 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한 약속이다. 그건 헬사렘즈 로트의 거리에서 방송해대는 걸로도 충분했다. 이 이상 기록을 늘릴 생각은 없었고 고작 다섯 번으로 대가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는 다니엘의 이마에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차가운 손이 닿았고 다른 쪽 차가운 손이 부드러운 온기를 선사했다. 푸근한 이불을 덮고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는 와중에 그는 스티븐의 말소리를 들었다.

알아.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푹 자.”

 

- 에필로그: 다니엘 경위의 사소한 궁금증 하나 -

 

눈을 떠 보니 여전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가에 드리워진 새카만 어둠 속에서 거리를 밝히는 불빛이 더욱 빛나보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고 업무 복귀를 선언하기에는 데드라인이 너무 지나가버렸다.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것은 그 동안 배터리를 방전시킬 만큼 연락이 왔었다는 과거를 함축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옆에서 누가 중얼거리듯 말을 걸었다.

연락은 해 뒀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다니엘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거의 떨어뜨렸다. 핸드폰을 사수한 후 보지 않았던 쪽을 돌아보니 스티븐이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얼굴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붉은 입술이 휘어지는 경로가 보였다. 밤거리를 밝히는 눈부신 불빛에 적응했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자다 깬 것처럼 평소보다 머리가 좀 더 부산스러워 보이는 스티븐이 보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뒤에야 볼 수 있는 그의 면전에 대고 다니엘이 속삭이듯이 소리쳤다.

, 깜짝 놀랐네. 뭐야, 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

내 집인데 그럼 어디서 자? 어차피 오늘은 여기 머무를 생각이었고, 생각보다 오래 자길래 소파에서 잘까 했는데 침대에 남아있는 공간이 거부하기에는 참 넓더라고.”

스티븐이 말한 대로 침대는 이인용이니까 두 명이서 자도 상관은 없긴 했다. 다만 뭐랄까. 저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서 잔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침대에 남아있는 공간을 두고 소파로 옮기기에는 뭔가 지독히 아쉬웠다. 침대는 한껏 안락하게 장만해놓고 소파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재질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 집에 들어오면 소파보다는 침대에 앉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래서, 아까운 공간이 남으니까 두 명이 누워서 잔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누웠지만 절대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문득 떠오른 의문에 다니엘은 등 너머로 스티븐을 불렀다.

근데 왜 혼자 사는 집에 침대가 이인용이냐?”

넓은 침대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공간을 십분 활용하는 스티븐이 괜히 남아나는 공간을 만들어놓았다는 게 이상했다. 그가 묻자 스티븐이 잠결에 부스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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