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링크 4. 울지 않는 새 논리의 반례
반쯤 열려있던 대문을 박차고 뛰쳐나오자마자 굉음이 들렸다. 막 점심 식사를 끝낸 인부들이 다시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투박한 장착용 유압 브레이커로 보도블록에 박힌 정체불명의 돌을 깨부수느라 분주했다. 남자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용의자를 찾을 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의 목격담이다. 다니엘은 무심코 지나쳤던 인부들에게로 다시 뒷걸음질 쳤다.
"이봐!"
다니엘이 크게 팔을 휘저으며 소리치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인부 한 명이 귀찮다는 표정을 하고 그를 흘겨보았다. 대로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큼지막한 암석이 잘 부서지지 않아서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뭔 일이슈! 공사 중이니까 저리로 가요!"
"혹시 키 크고 검은 머리에 양복 입은 남자 어디로 갔는지 못 봤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사람이 어디 한 둘이야!"
노파랑 같이 있었고 얼굴 한 쪽에 커다란 흉터가 있다. 부연설명을 끝내자마자 말을 걸었던 인부의 옆에 있던 사람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건너편에 있는 좁은 골목을 가리켰다.
"저리로 가던데."
넓은 대로를 놔두고 왜 저런 곳으로 사라졌을까. 이제 남자가 하는 일은 모든 것이 수상해보였다. 다니엘은 속으로 의혹을 키우며 골목으로 달려갔다. 양 쪽이 모두 건물에 가려 한낮이지만 햇볕 하나 들지 않는 그 곳은 완벽하게 그림자로 녹아든 길이었다. 그렇게 요란하게 머리를 두드리던 공사판 소음이 여기서는 아득하게만 들려왔다. 고요하고 어두운 골목은 어딘지 그 남자와 닮아있었는데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특이한 점 때문에 다니엘은 곧 그 골목길이 마음에 들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평범한 골목길처럼 여러 갈래로 길이 어지럽게 갈리면서 구획이 나뉘었겠지만 이 골목길은 한쪽 길은 막혀 있었다. 부자연스럽게 골목길 한 쪽을 막아서고 있는 건물의 정체는 다른 구획에서 이쪽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덕분에 다니엘은 고민 없이 단 하나 남은 길로 방향을 틀었지만 행운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했다.
"제길, 어디로 가야되지."
이럴 때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형사의 직감이라는 게 있어서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남자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찾지 않던 신을 찾으며 제일 그럴듯하게 감이 오는 길을 택해 끝까지 가 보았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놓쳤나. 다니엘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찰 신분증은, 절차가 성가시긴 하지만 잃어버려도 재발급 받을 수 있다. 이대로 가망 없는 추격을 포기하고 그냥 호출에 응답해 서로 출동하는 게 나을지도. 그 남자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신분증을 이용해먹을 것이 기분 나쁘긴 했지만 나중에 그것을 빌미로 추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후일을 기약하자. 그렇게 결심하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할 때 다른 한 편에서 다시 굉음이 들렸다. 공사장과는 이미 충분히 멀어졌기 때문에 그 곳에서 이렇게 큰 소리가 들려올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들린 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도로를 잡아 비트는 것 같은 소리는 한 번으로 끝이었지만 마치 잡아끌린 것처럼 다니엘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아.”
모서리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다! 다니엘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니엘은 골목길 모서리에 몸을 기댄 채 슬쩍 상황을 엿보았다. 남자에게 접근해가는 와중에 그는 이상할 정도로 한기를 느꼈는데 모서리 너머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었지만 그 남자의 주변은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지열에도 녹지 않는, 에메랄드처럼 단단한 얼음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앞에는 평생에 처음 보는 괴상한 생물체가 머리만 남겨놓고 얼어붙은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각질로 뒤덮인 몸체가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곤충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생김새는 훨씬 기괴했다.
“응, 그러니까 클라우스에게는 먼저 가라고-”
갑자기 남자가 하던 말을 멈췄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다니엘은 남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위험하다. 다니엘은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훈련생 시절에도 체격 차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제외하고는 매번 첫 번째로 결승 라인을 끊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겁에 질리지도 않았고 쥐가 난 것도 아니고 몸은 움직일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다리는 움직일 줄 몰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차갑고 단단한 얼음이 발목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다니엘이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것인지 남자는 여유롭게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관찰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능숙한 다니엘이었지만 남자의 표정에서는 무언가를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큰 키로 앞에 서서 위협적으로 내려다보는 가운데 표정은 여전히 온화해서 몸과 표정이 서로 다른 단서를 그에게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뭘 하시는 걸까, 형사님.”
“네 놈이야말로 뭘 하고 있는 거냐.”
남자는 곤란에 처한 것처럼 웃었다. 다니엘은 이번에도 마치 잘못한 것은 그 쪽이라는 인상을 주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내 경찰 신분증은 왜 가져갔지?”
“신분증?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군.”
“모르는 척 하지 마!”
좀 더 위압감을 줄 수 있는 거리만큼 다가가 남자를 위협해보려고 했지만 다리가 얼어붙어서 땅바닥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엉뚱하게도 앞에 서 있던 남자에게 몸을 의지하고 말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엉거주춤하게 안겨버린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다니엘은 정신이 없었다. 약하게 향수 냄새가 났고 상쾌한 향에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체취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남자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황급히 상대의 가슴팍을 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쪽에서 다니엘의 팔을 잡고 도리어 끌어당겼다.
“무슨……?”
당황한 다니엘에 비해 별달리 당황한 것 같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경찰 신분증을 가져간 건 내가 아니야. 뭔가 단단히 착각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 광경을 목격해버린 이상 적절한 조치도 취해야겠지.”
무슨 조치를? 다니엘은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지만 남자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남자에게서 웃음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할까, 예를 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존재를 말소한다거나.”
다니엘은 비로소 남자가 팔을 잡고 잡아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발은 움직일 수 없었고 팔은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그의 숨통을 끊기 위해 칼을 경동맥에 들이대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엉덩이를 씰룩이는 정도일 것이다. 위험해. 정말 위험하다. 다니엘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탈출해야 한다. 손과 발이 모두 자유롭지 않을 때 상대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남자의 눈동자가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아이고, 이미 늦었나.”
“마담.”
남자가 다니엘의 어깨 너머로 말을 걸었다. 그 역시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노파가 키우던 보더 콜리가 이쪽으로 혀를 내밀며 달려왔고 그 주인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다니엘의 경찰 신분증을 손에 쥐고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그는 새가슴을 할딱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노파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불러도 듣질 못 해 이 사람아. 하필 공사판도 벌어지고 해서 더 안 들렸던 것 같지만. 발은 엄청 빨라요. 이거 소파 구석에 박혀있던데.”
“흐응-그런 거였나.”
남자가 상황을 납득하는 것처럼 콧소리를 냈지만 다니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그러면 남자가 가져갔다고 생각했던 신분증은 사실 그냥 어제 노파와 이야기하느라 앉아있던 소파에 끼어있었고 자신이 의심했던 남자는 결국 무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럼 이 상황은 대체.
“그러길래 내가 하는 말을 들었어야지. 이미 늦었어, 총각.”
“네? 으앗, 뭡니까, 뭐!”
노파가 쯧쯧 혀를 차며 항상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로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바람에 다니엘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노파가 다시 지팡이를 거두어들이고 나서도 다니엘은 한동안 그녀를 경계했다. 노파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더 콜리가 오늘 따라 유독 충성스럽게 보였다.
“내가 보더라고 불리는 건 가명을 쓰는 게 아니고 그냥 별명 같은 거야. 내가 키우는 개 말야. 그게 보더 콜리거든. 맨날 끌어안고 있으면서 그것도 몰랐어?”
“아.”
다니엘은 머리를 한 대 쥐어 박힌 것 같았다. 노파가 키우는 개의 견종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부인의 호칭과 연관 지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노파는 지팡이를 휘휘 돌리면서 다시 혀를 찼다.
“토니는 경찰견 출신이야. 보더 콜리는 영리해서 경찰견으로 자주 쓰이지. 한 때는 초동수사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는데. 그래도 뭐, 실력은 녹슬지 않았네. 신분증 냄새 한번 맡고 냅다 달려가는 게 순간 예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어. 중간에 불행한 사고를 당해서 은퇴한지는 벌써 오래됐지만. 어디보자, 나랑 같이 했으니까 벌써 십삼 년이지?”
“네?”
“아, 얘기 안 했던가. 나도 예전에는 경찰이었어. NYPD 맨해튼의 가르시아 경부라고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이번에는 후두부를 가격당한 것 같은 혼미함을 느꼈다. 다니엘은 그제야 노파에게서 느껴졌던 부자연스러운 평온함과 어딘지 익숙하게 공감이 갔던 감정의 경험담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지옥의 파수꾼이었던 것이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마담. 저도 중요한 용건이 있어서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렇지. 그래, 그래. 이렇게 일이 꼬여버렸으니 어떡한다.”
다니엘은 이쪽을 지그시 노려보는 노파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침묵이 자리 잡은 골목길에서 토니가 그의 주변을 맴돌며 연신 낑낑댔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된 거, 둘이 협력해보는 건 어떤가?”
“네?”
순간 머리 위의 남자와 목소리가 겹쳤다. 다니엘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남자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다니엘이 남자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만큼 그 남자도 다니엘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노파는 둘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대충 보니까 HLPD는 지금 체계 하나 잡히지 않은 것 같고 라이브라는 쓸데없이 적이 너무 많아. 자네, 지금도 일이 그렇게 많은데 나중에 HLPD가 자리 잡고 나면 인간에게도 쫓길 셈이야?”
“그건…확실히 좀 성가시겠군요.”
남자는 성가시다고 표현했다. 다니엘은 그 표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가신 것 이상은 아니라는 것에서 남자가 은근히 우월감을 내비치는 것 같았다. 노파가 이번에는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네는, 최연소로 승급을 하긴 했다는데 내가 보기엔 아직 부족한 게 태반이야. 일단 주변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익혀야겠어. 그런 의미에서 라이브라가 자네의 보청기가 되어줄 수 있을 거야.”
보청기라니. 다니엘은 남자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다니엘은 라이브라라는 것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처음 접한 브랜드의 제품을 신용할 수 없다는 느낌에 휩싸여 남자를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니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싫다면요?”
“그럼 여기서 죽겠지.”
단호하게 말을 끊는 노파를 보건데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다니엘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그는 어딘지 못미덥다는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데요. 무엇보다 지역 경찰은 신용할 수가 없어서요. 아, 가끔 마담 같은 분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군.”
“어, 아니 잠깐만.”
다니엘은 무의식적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처분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다니엘은 어느새 남자가 다시 그의 팔을 세게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젠장. 다니엘은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닌 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남자는, 뭔 진 모르겠지만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을 가졌다. 다니엘은 초능력이라는 걸 믿지는 않았지만 일부 비밀 결사 같은 곳에서는 실제로 운용되고 있다는 음모론들이 경찰 내부에서는 심심치 않게 돌고는 했다. 그런 사람이라면 형사 한 명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닐까. 그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봐.”
“뭐야, 마지막 유언이라도 남길 건가? 참고로 살려달라는 유언은 기각.”
아주 그냥. 두 팔이 남자에게 잡혀있지만 않았다면 한 대 쳤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다니엘이 짐작하고 있는 상황에 비해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지만 그렇다고 느끼는 압박감이 줄어들진 않았다.
“이봐, 스티븐. 우리 거래를 하는 게 어때?”
스티븐이라는 이름은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다니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탐색하는 듯 보이는 그에게 다니엘은 명함 하나를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오랫동안 남자에게 기대어 있었고 팔은 붙잡혀 있었지만 팔꿈치 아래로는 자유로웠다. 그리고 자유로운 부분을 움직여 남자의 주머니를 몰래 뒤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스티븐 A. 스타페이즈. 라이브라.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고 존재를 이해하기도 힘들었지만 그들은 지옥에 관해서 알고 있었다. 괴물들과 대적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고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도 알고 있다.
“싫다면?”
“그럼 그 쪽 조직에 관한 정보를 지금 당장 세상에 뿌려버리겠어. 라이브라인지 뭔지, 어쩌면 우리 쪽 윗대가리들과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 조직원의 정보가 마구잡이로 세상에 새어나간다면 그건 좀 곤란하겠지?”
이번에 남자는 웃고 있지 않았고 대신 다니엘이 웃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 종이 쪼가리를 그대로 믿겠다는 건가?”
“그럼 이건 어때? 아까 통화한 상대 이름이 클라우스던가.”
클라우스라는 이름을 꺼내든 순간 스티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그렇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은 처음 들었다. 여태껏 울지 않고 않던 새의 울음소리가 지금에서야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가 붙잡고 있던 팔을 놓고 그를 확 밀쳐냈다. 어느 틈에 얼어붙어 있던 다리도 녹아서 다니엘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고-숨 돌릴 새도 없이 그의 옆으로 남자의 다리가 메다 꽂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니엘은 눈을 멀뚱하니 뜨고 남자를 바라보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의 다리가 꽂힌 곳은 충격으로 바닥이 움푹 파였다. 대체 어느 정도의 각력이 있어야 저렇게 되는 것인지 짐작조차하기 힘들었다.
“좋아. 그 정도의 비열함이라면 한번 손을 잡아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보청기정도라면 되어주지. 이곳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는 지불해야 될 거야.”
다니엘은 거래가 성립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새가 울지 않는 이유는 새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생각해봐야할 것은 정말 새가 울지 않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새는 울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새가 울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날 불현 듯, 지옥의 거리에서 새를 발견하고 놀라움을 느낀다. 새가 없었을 때와 있었을 때, 그 사이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처음부터 미싱 링크 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그가 듣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에스메랄다와의 이별도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했을 만남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이름은?”
“……다니엘, 로.”
무슨 뜻으로 내민 것인지 불확실한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새 한 마리가 명랑하게 지저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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