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형사들 사이에서 내기를 하는 건 생각보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만성적인 긴장감으로 날카로워져 있는 분위기를 풀어주기는 윤활제 역할로 적격이기 때문이고 그 이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때로는 으슥한 뒷골목에서 마약이라도 거래하는 것처럼 서로 낄낄거리다가 지나가던 행인의 미심쩍은 시선을 의식하고 짐짓 근엄한 척 하느라 매번 표정을 험악하게 굳힌다. 그래서 사실, 일반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경찰들이 웃는 걸 보기란 생각보다 힘들다. 경찰들은 언제나 위협적인 눈초리를 하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경부보, 내기 하나 할까?"

으슥한 뒷골목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내가 웃으면서 제안을 한다. 웃지 않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기란 사실상 힘들다. 그는 항상 웃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기? 그런 건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한다."

그리고 나는 사내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아마 경찰로서 그를 믿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라이브라와 경찰의 관계는 그랬다. 서로 믿지 않고 협력을 한다. 내기를 제안한 상대는 거절을 당했는데도 여전히 여유로운데 그것은 상대를 믿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었다. 서로 기대하는 것이 없기에 거절당해도 별다른 타격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그 미소에 기분나쁜 느낌이 감돌았다.

"내가 이겼군."

"?"

"경부보가 과연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일지에 관해 내기를 했거든. 나는 하지 않는다, 에 걸었지."

나는 말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사내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연기가 바로 그의 주변을 가득 메웠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기에.

"설마 그 반대에 거는 사람이 있다니. 그 사람은 널 믿거나, 널 잘 모르거나, 아니면 널 잘 모르니까 믿는 사람이군."

"그럴지도."

스티븐이 웃었다. 스티븐은,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 사람과는 두 번째 내기도 했어. 경부보에게 다시 내기를 하자고 한다면 받아들일까? 나는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에 걸었지."

대체 저 스티븐과 내기를 하는 사람은 누굴까. 라이브라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혹은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즉 경우의 수는 많았지만 보아하니 그에게 꽤나 휘둘리는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질 게 뻔한 내기를 두 번이나 하는 걸 보면. 어쨌든 스티븐이 이 쪽을 보고 웃고 있었고 그건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경부보 내기 하나 할까?"

"이봐 이봐, 지금 아주 비굴해 보이는 거 아나? 난 이미 안 한다고 했어."

"또 이겼군."

. 묘한 압박감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미지의 인물이 내가 스티븐이 제안해오는 내기를 거절할 때마다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 모르는 사람이니까 크게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경찰인 내가 자꾸 거북한 느낌을 부추겼다. 그 사람은, 내기에서 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여전히 스티븐은 이 쪽을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세 번째 내기도 했어. 그 쪽이 내기를 받아들일지 아닐지에 대해서. 그래서, 경부보. 우리 내기 하나 할까?"

대체 이 인간은 뭘 원하고 있는 걸까? 그는 도통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남자다. 그리고 이런 남자와 이런 수상쩍은 내기를 시작한 사람도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그 사람은 나와 스티븐의 관계를 알긴 아는걸까? 경찰과 라이브라의 내기라니 성립하기 힘들지 않은가. 아니면 가능성이 적은 쪽에 습관적으로 내기를 거는 사람인가. 그런 유형의 인물이라면 라이브라 내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내기 상대가 라이브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미적지근한 죄책감이 자꾸 성가시게 굴었다. 혹시 그는 불리한 내기에 계속 응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무슨 내긴데 자꾸 그러는 거지? 이상한 거면 체포해 버린다."

"그럼 내기에 응하는 건가?"

내기의 내용을 듣게 되면 내기에 응해야 한다. 그건 높은 확률로 전제되는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내용을 듣고 판단하겠다고 물러서면 비겁한 사람으로 몰리곤 한다. 그렇지만 저 남자에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그다지 마음 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상한 내기라면 가차없이 발을 뺄 수 있다. 물론 거짓말을 곁들이는 것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그래."

"내가 이겼군."

. 어째서? 내가 동요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스티븐이 슬며시 웃는다.

"나는 세 번째 내기에는 응할 거라는데 걸었거든. 완승이로군."

아차, 그러고 보니 세 번째 내기에서 그가 어느 쪽에 걸었는지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무심결에 이번에도 응하지 않는다는 쪽에 걸었다고 넘겨짚어 버렸다. 분했지만 좀 더 신경쓰이는 것은 내기에서 완패한 상대의 안위였다. 어쩌면, 저 남자라면. 그런 생각이 맴돌면서 나는 조금 다급하게 언성을 높여버렸다. 어쩌면 내가 그와의 내기에서 이긴다면 상대를 구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뭐에 관해 내기를 걸고 싶은건데? 그거나 얘기해보라고."

", 사실 생각해놓은 건 없어. 내가 뭘 믿고 그 쪽이랑 내기를 하겠어?"

그래. 더 이상 아무래도 참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사실 상대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자리에서 스티븐을 체포하는 거였으니까. 그를 구속할 이유에 관해서는 수십가지라도 댈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싶다. 당황하는 그를 서로 연행하는 생각만 해도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어느샌가 나는 웃고 있었다. 아주 아주 기분 좋게.

"경부보는, 내 앞에서 자주 웃는 것 같아. 특별해진 느낌이로군."

", 갑자기 무슨 소리야?"

"웃으니까 훨씬 나은걸. 앞으론 자주 웃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아 잠깐만-여보세요? 아 예. 오랜만입니다."

스티븐은 여전히 나는 모르는 누군가와 기분좋게 통화를 했다. 그가 통화를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절대로 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와 통화하는 상대를 위해서-그 때 스티븐이 여전히 통화를 끝내지 않은 채 이 쪽을 바라본다.

"미안. 지금 일이 생겨서 가봐야될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그렇게 그는 조촐한 회담을 열기로 했던 뒷골목을 미련 없이 떠났다. 그 곳에 휑하게 남은 것은 마침 바닥으로 낙하한 담배 꽁초 하나와 나였다. 담배 꽁초는, 앞에서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지나가던 남학생들이 떨어뜨렸다. 그들은 으슥한 뒷골목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그 쪽을 쳐다보는 나를 발견하고 뜨끔한 것 같았다. 현장 검거는 간만이다. 바닥에 떨어진 꽁초는 주워서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버렸다.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면 벌금인 거 알지?"

"-하필."

그래. 아마 너희한텐 재수가 없는 날일 것이다. 그리고 나한테도. 아주 재수가 없었다.

"다음부턴 제대로 버려."

벌금 딱지를 떼면서 생각해 보니 오늘도 그들에게 경찰은 언제나 위협적인 눈초리를 하고 노골적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 투덜거리면서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니 왠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사실 경찰은, 좀처럼 웃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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