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배달부

 

 

 

올해에는 얼마나 추우려고 벌써부터 이 난리실까.”

피에르는 입을 벌려 하얀 입김을 뿜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다들 한번쯤 해보는 행동이었다. 예전에는 길바닥에 떨어진 가느다란 막대를 집어 들고 입김을 뿜으며 담배 피우는 시늉을 내곤 했었다. 지금은 진짜로 담배를 피우게 되었지만. 어느덧 연기와 구분이 가지 않는 입김을 바라보며 그는 다시 담배 끝을 입에 물었다. 이제는 흡연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지만 예전에는 이 매끈한 원기둥을 받아들고 어떻게 입에 물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벌써 먼 옛날이지.‘

흡연에 익숙해지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굳이 애를 써가며 기억에 간직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소한 사실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는지는 그렇게 신경쓸만한 일인 것 같지 않았다. 그보다는 언제부터 흡연을 그만두게 되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았다. 무엇이든, 일의 시작보다는 그 끝맺음이 중요한 법이리라. 적어도 피에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뱉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입김에 비해 담배 연기는 아직도 그 주변을 하얗게 맴돌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피에르는 괜히 손가락으로 연기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리고 갈라놓기가 무섭게 연기는 다시 합쳐졌다. 몇 번이고 허공을 그어내려도 잠시 갈라져 있던 연기는 다시 달라붙어 하나가 되었다. 자신의 행동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은 피에르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고 다시 담배를 빨기로 했다.

피에르!”

담배 피우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나 다름없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 불문율을 깨뜨릴 만큼 무언가 급한 일일수도 있었다. 다만 이름을 부른 사람이 얼마 전에 그의 밑으로 들어온 새내기였기 때문에 그걸 모를 수도 있다는 함정이 있었지만. 이제 갓 열다섯이 된 그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피에르를 불러대곤 했다. 원래 뜻처럼 길바닥에 널린 돌멩이만큼이나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큰길가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 서너 사람이 한꺼번에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갈 길을 가게 된다. 피에르는 차가운 돌담 벽에 담배를 지지며 소년에게 말했다.

담배 피우는 시간엔 되도록 방해 말라고 말하지 않았냐? 그리고 멀리서 그렇게 큰 소리로 내 이름 좀 그만 불러라.”

피에르가 마뜩찮다는 어투로 투덜거리자 소년은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다지 진중함이 묻어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다음번에 또 그러겠다는 의지를 암묵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신도 저 나이 때는 그다지 진중함이라는 것을 몰랐다. 오히려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다면 모를까. 지금도 주위에는 그다지 무거운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는 것 같았고 본인도 그렇게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방방 뛰어오르는 가벼움을 눌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볍게 대꾸한 대가로 소년의 이마를 담뱃갑으로 살짝 때렸다.

아파요.”

아프기는. 공기로 맞는 것만큼 아팠을걸. 아니면 진짜 아픈 게 뭔지 알려줘?”

소년은 다시금 때리려는 시늉을 하는 피에르를 피해 돌담 벽의 측면으로 붙어 섰다. 그리고 피에르가 사실은 때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다가와 팔에 끼고 있던 포장된 상자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피에르는 선물이라도 주는 건가 싶었지만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다. 사과의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소년이 예언자가 아닌 이상 이미 선물을 가지고 온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애초에 선물을 주고받을만한 사이도 아니었고 소년에게 그런 돈이 있지도 않다는 것은 피에르도 잘 알고 있었다.

히카르도 바레타? 까미유 데샹? 그게 누구예요?”

피에르는 소년의 입에서 거론될 리가 없는 이름들을 들었다. 그 바람에 나중에 피우려고 다시 담뱃갑으로 넣으려던 담배 한 개비를 제대로 끼워 넣지 못했다. 앞 쪽이 구겨진 담배를 원 상태로 돌리기 위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피에르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히카르도 바레타와 까미유 데샹. 그 두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조직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모든 시작점만 다루더라도 이야기는 한없이 길다. 그래서 시작점을 차치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은 예전에 이미 조직을 나갔다. 소년이 들어오기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이었고 다들 그다지 입에 담고 싶어 하지 않는 사건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둘에 관해 소년이 알고 있을 가능성은 적었고 소년은 그 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기는 했다. 만약 뭔가 알았다면 적어도 그렇게 가볍게 피에르에게 그 둘에 관해 묻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두 사람의 이름이 소년의 입에서 튀어나오게 된 것일까? 피에르는 소년이 그의 앞으로 내민 상자로 눈길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그냥 상자가 아니라 소포였다. 주소지가 쓰여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안에 있을 것이 비어져 나온 부분 없이 깔끔하게 선물용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세월에 좀먹은 느낌이었다. 둥글어진 귀퉁이는 색깔이 희미하게 바래 있었고 작게 선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실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았다면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물용 소포라면 좀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연상하게 되지만 소년이 들고 있는 소포는 사무실에서 바로 포장해 보낸 것처럼 단조롭고 삭막했다. 색이 바래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건 왜 물어?”

피에르가 묻자 소년은 보라는 듯 소포를 흔들었다. 선물이라면 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법 한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거, 까미유 데샹이라는 분이 히카르도 바레타라는 분한테 보내시는 건데 그런 사람 아무리 찾아봐도 명부에는 보이질 않아서요. 주소는 여기가 대충 맞는 것 같은데.”

그 의사양반이?”

, 의사분이세요? 누군지 아시는군요!”

소년은 한시름 놓은 두 눈을 빛내며 피에르를 바라보았다. 피에르는 무심코 말을 내뱉고는 조금 후회했다. 소년에게 그렇게 무방비하게 속내를 내비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발신자와 수신자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그가 알고 있던 까미유 데샹이라면 딱히 히카르도에게 선물 같은 것을 보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니면 받기 위해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피에르는 소년이 들고 있던 소포를 가져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소지가 쓰인 부분이 엷게 변색되었고 군데군데 지워져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남겨진 부분으로부터 어렵게 본문을 해석해낼 수 있었다.

됐으니까, 가 봐.”

? 그럼 그 소포는-”

내가 전해 줄 테니까.”

피에르는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소년은 익숙하지 않은 선의에 당황한 것 같았다. 무엇이라도 잘못한 것일까 걱정되는지 어물거리며 자리를 뜨지 못하자 피에르는 선의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 배려라는 것을 해줘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담배 한 개비나 구해와라. 너 때문에 다 못 피우고 버렸잖아.”

피에르가 선행의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자 소년은 그제야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의 법칙에 맞아떨어진 듯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피에르는 소년이 떠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동안 소포를 바라보았다. 주소지에 쓰여 있는 익숙한 필체를 보자 가슴 언저리에서 시큰한 느낌이 올라왔다. 너무 잘 알고 있는 필체라 도리어 그 필체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하지만 이내 피에르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필체에 관해 의심할 여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이상 회의하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고집일 것이다.

오랜만이구나, 히카르도.”

피에르는 글씨가 쓰여 있는 부분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힘을 주어 쓴 글자는 상자에 움푹 파인 부분을 만들어서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이 주소를 쓴 사람은 까미유 데샹이 아니라 영락없이 히카르도라는 것을. 그는 글을 쓰는 것에 익숙지 못한 탓인지 항상 종이를 꾹꾹 눌러썼다. 그렇다면 왜 받는 사람이 주소지를 쓰게 되었을까? 그 점에 관해 피에르는 생각해보았다. 그는 소년이 이미 주변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뒤 피우다가 꺼버린 담배를 다시 꺼내들고 불을 붙였다.

바보같이, 발신인이랑 수신인을 바꿔 쓰면 어쩌자는 거냐. 게다가 지 직장 주소도 틀렸잖아.”

피에르는 소년이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던 결점을 찾아냈다. 소년이 주소지가 틀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이유는 온 지 얼마 안돼서 이 곳 주소를 정확히 숙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소포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대충 확인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주소가 대충 맞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던 소년의 말이 문득 피에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지 주소는 틀려놓고 그 재수 없는 놈 주소는 잘 썼네.”

피에르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깨닫고 혀를 찼다. 언제나 그랬다. 자신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결국은 알게 되었다. 까미유 데샹이 일하던 병원은 히카르도가 일하던 곳, 그러니까 이 건물보다 훨씬 주소가 복잡했지만 틀리게 적지 않았다. 어차피 틀린 주소지로 배달될 수는 없으니 소포는 발신인에게로 돌아갔어야 했을 것이다. 우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마지막에는 까미유에게 전해졌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소포는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소포가 돌아가야 했을 곳은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피에르는 소포를 발송한 날짜가 쓰여 있는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갈 시간에 비하면 소포를 보내고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찰나의 사이에 까미유 데샹과 히카르도 바레타가 카모라를 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일어났다. 앞으로의 시간을 영원히 바꿔놓았을 사건이 그 사소한 시간 동안에. 종종 아주 별 것 아닌 일을 찰나에 빗대곤 했던 피에르는 더 이상 그 표현은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여태까지 알고 있던 세상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래서 갈 곳을 잃은 소포는 그 동안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한 곳에 처박혀 있던 것을 마음씨 좋은 배달부가 다시 꺼내들었던 것일까. 받지 못한 소포를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추운 눈길을 헤치고 일일이 비슷한 주소를 찾아 헤맸던 것일까. 선물은 크리스마스를 위해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치 노린 것처럼 크리스마스에 전해진 것은 하필 오늘 괜히 따뜻한 감성으로 중무장한 배달부가 추위를 이기고 전해주는데 성공했기 때문인 것일까. 피에르는 소포를 뜯어 내용물을 보았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군더더기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마치 히카르도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적힌 편지 한 장에 이미 시들어버린 꽃다발 하나가 선물 상자 안에 들어있었다. 꽃다발을 선물할 생각이었다면 시들기 전에 상대에게 보내야했을 텐데 복잡한 우편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히카르도는 왜 익숙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까미유에게 선물을 보내려고 했던 것일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직접 전해줄 생각은 하지 못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상대방을 놀래 켜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용기가 부족했던 탓일까. 피에르로서는 짐작만 할 뿐 사실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히카르도는 깊이 후회했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확신이 가서 피에르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작 몇 시간 후에 닥칠 일을 알지 못한 채 고백이 담긴 편지와 함께 꽃다발을 넣어 상자를 봉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소지를 적었을 히카르도. 정성들여 쓴 주소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배달부에게 넘겼을 그 모습을 피에르는 상상할 수 있었다.

정말, 바보 같아.”

피에르는 씁쓸하게 웃었다. 만약 히카르도가 주소지를 잘못 적지 않아서 소포가 좀 더 빨리 배달될 수 있었다면, 미래는 바뀌었을까? 글쎄. 피에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이 선물이 그만한 힘이 있었을지, 힘을 줘서 쓴 네 글자가 과연 그렇게 의미가 있었을지. 어쨌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상에 지나지 않는 가운데 다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와서는 다 소용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소포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돌아갈 곳도 갈 곳도 남지 않은 선물 상자를 어떻게 할까 피에르는 잠시 고민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편지에 불을 붙이고 상자 안에 다시 넣었다. 점차 따뜻해지다가 이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까맣게 바스러지는 상자를 피에르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 일단 둘이 만날 것이 가장 확실한 곳은 저세상 같으니까.”

그러니까 이 선물 상자를 품었던 여러 배달부 중 마지막 배달부로서, 그 쪽으로 먼저 소포를 배달시켜 놓을게. 피에르는 그렇게 말하며 어쩌면 단 하나였을지도 모르는 그 둘 간의 선물을 불태우는 행동에 깃든 떳떳치 못한 마음을 합리화시켰다. 그는 이제 꽁지만 남은 담배 한 개비를 바닥에 버리고 까맣게 흔적이 남은 하얀 길바닥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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