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

 

 

난 이제 너를 놔 줄 거야.”

태현은 손목을 단단히 결박하고 있던 밧줄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로 가려진 눈은 보이지 않는 그대로였지만 상대가 더 이상의 자유로움을 허락할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 눈에 그런데 뭔가가 씌워져 있던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태현은 자유로워진 손을 들어 눈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아니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누군지 알고 있는 그가 태현의 손목을 세게 부여잡았다. 아프다. 태현은 점점 강하게 손목을 짓눌러오는 악력에 고통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점점 끊어지듯 아파오는 고통은 한계 없이 치솟는 것 같았다. 참다못해 터뜨린 비명이 귓가를 가득 매웠다. 목에서 가래가 끓었다. 머리는 뜨거운데 몸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와중에 유일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태현의 귀에 날아들었다. 허강민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시 널 잡을 거야.”

태현은 눈을 떴다. 막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뼈가 어긋날 것만 같은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태현은 심호흡을 하며 천장을 응시했다. 눈은 감으면 안 된다. 그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피로감이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운 채로 수분이 지나자 호흡이 안정되고 몸이 유연성을 되찾는 것 같았다. 이제는 움직여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태현은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부터 움직여보았다.

이제 널 놔 줄 거야. 꿈속에서 들었던 말이 다시 들려오면서 태현은 전극으로 손가락 끝을 자 극하는 것과 같은 날카로움을 느꼈다. 전기 자극처럼 따끔하면서 순간적으로 찾아든 느낌에 태현은 숨을 멈췄지만 붙잡기도 전에 느낌은 사라지고 고통이 뒤늦게 엄습했다. 묵직하기 보다는 뜨거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성가신 자극이 지속적으로 손가락 끝을 괴롭혔다. 그리고 태현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오른손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은 있었다. 절단된 진짜 오른손을 대신해 끼운 가짜 손이었다. 하지만 가짜 손과 함께 찾아온 것은 가짜 통증이었다. 분명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다시 널 잡을 거야. 태현은 말소리가 머리를 때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마치 혹 주머니처럼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무게감을 떨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흔들리는 것의 무게감만 선명해질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태현은 의수를 바라보았다. 마치 진짜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짜가 더 이상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머리가 진정되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태현은 침대에 축 늘어진 채 멍한 눈길을 창가로 돌렸다. 두꺼운 커튼은 달빛조차 막아버렸다. 사실 창가쪽을 쳐다본다고 했지만 실제 창이 거기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태현은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내 손도, 이미 결박을 풀었다고 생각한 것도 다 가짜이지 않을까.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 무뎌져 버린 가짜가 아닐까. 그리고 어둠이 걷히고 다시 빛으로 밝아진 시야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왠지 밧줄로 움직일 수 없게 결박된 자신의 손목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언젠가는 발목도, 팔도 모두 묶이게 될까. 종국에는 온 몸이 결박된 채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침대에 누운 채 정말 움직일 수 없게 될 때를 기다리게 될까.

태현은 문득 밀려오는 두려움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창가로 황급히 다가갔다. 달빛을 차단하고 있던 두꺼운 커튼을 거칠게 걷어내자 눈을 찌르듯 밝은 태양빛이 방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이미 날이 밝았었구나. 태현은 중얼거리며 내리쬐는 태양빛을 막기 위해 무심코 팔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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