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히카르도는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이 시간에 집에 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그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히카르도는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며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열 때와 달리 닫힐 때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해서 다시 열어보았지만 마치 쇠를 가르는 것 같던 그 자극적인 소리는 다시 나지 않았다.

소릴 지르고 기절해버렸나. 그렇게 중얼거리고 경첩에게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껴 혼자 웃던 히카르도는 이건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표정을 굳히고 다시 현관문을 닫았다. 쿵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뒤로하고 그는 익숙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많이 봤던 가구들과 광경이었지만 이 시간에는 다른 면으로 햇살을 받아내니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시간대에 들어와도 변함이 없는 것은 풍경 속에 배어있는 냄새였다. 원래 그 속에 녹아들어있었을 것 같은 냄새는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아서 이제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냄새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면 아쉽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집에 와 있었군.”

탁자에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히카르도는 의자 뒤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히카르도와 달리 조용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 차가운 손이 잠시 히카르도의 눈앞을 가렸다가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니 까미유가 싱글거리며 서 있었다. 단정하게 떨어지는 검정색 캐시미어 코트는 여전히 그에게 잘 어울렸고 변함없이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까미유. 너도 일찍 끝난 건가?”

아니. 난 다시 가봐야 돼. 잠시 뭐 좀 가지러왔어.”

?”

말해도 알까? 까미유는 가볍게 대꾸하며 잠시 그의 서재로 사라졌다. 말해주면 알지도 모르지. 모를 수도 있지만. 히카르도는 까미유가 사라진 쪽을 향해 대답했지만 상대방의 옷자락이 일으키는 바람소리에 묻힌 것 같았다. 잠시 뒤 까미유가 서재에서 찾던 것을 가지고 나왔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차이점은 없는 것으로 보아 부피가 작은 물건인 것 같았다. 알려주지 않는 것이 아쉬웠지만 다시 물어볼만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서 히카르도는 그냥 기억 속에서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는 언제나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냄새, 바뀌었군.”

히카르도는 까미유가 스쳐지나갈 때 무심코 말을 걸었다. 무슨 소리야. 까미유는 그렇게 물으며 다시 나갈 채비를 하며 신발을 신고 있었다. 히카르도는 남은 빵을 한 입에 삼키며 까미유를 마중하기 위해 현관에 섰다. 히카르도는 신발을 신느라 벽에 손을 짚고 수그리고 있는 그의 등을 살짝 누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친구와 달리 히카르도는 그다지 장난을 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의 질문에 나머지 대답을 하기로 했다.

너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바뀐 것 같아서.”

, 향수 뿌렸어. 일부 환자들은 냄새에 민감해서.”

까미유가 나갈 때 향수를 뿌리곤 한다는 것은 히카르도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익숙한 체취를 감추고 새롭고 산뜻한 향기로 몸을 감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다시 그가 알고 있던 냄새로 돌아오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익숙했던 그의 체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히카르도는 그 점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향수 같은 걸 뿌리는 것보다 원래 그에게서 나던 냄새가 더 좋았다. 단지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히카르도는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는 까미유의 뒷모습을 안았다. 기습적인 그의 포옹에 까미유는 나지막하게 웃었다.

아까 전에 장난친 걸 이렇게 복수하는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히카르도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렇게 그의 목 뒤에 고개를 파묻고 그의 체취를 맡았다. 가까이 그를 끌어안자 까미유를 감싸고 있던 향수의 장막이 걷히고 익숙한 냄새가 다시 흘러나왔다. 히카르도는 그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익숙한 그의 체취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 나가봐야 돼. 이제 그만 놓아주지 않겠어?”

, 미안. 잘 다녀와.”

히카르도는 까미유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가 놓아주기 무섭게 다시 향기의 장막이 드리웠다. 그리고 이내 그 향기조차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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