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은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에는 꽤나 중립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꽤나, 라고 군더더기를 붙인 이유는 참된 중립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습관에 관해 논하자면 더욱 의구심을 품게 된다. 나는 습관이 몸에 배는 현상을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내가 행동하는 방식을 제약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가장 읽히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의중을 읽히기 때문이다. 네트 너머로 보이는 눈들은 언제나 습관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습관을 의식하고 목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습관이 된다는 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카아시 케이지, 습관에 관하여-
당신을 위한 습관
“아카아시!” 라고 보쿠토가 힘차게 외치는 것을 아카아시가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바람 같은 외침이 코트를 쓸고 지나간 뒤 아카아시의 눈동자는 아주 짧은 순간 그 쪽을 향했다. 보쿠토는 세터들이 자주 보여주는 그 찰나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아카아시는 언제나처럼 속으로 무심한 계산을 하는 와중인 것이다. 막 스텝을 밟으며 뛰기 시작한 보쿠토에게 공을 주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솔직한 동선을 눈치 챈 블록들이 벌써 벽을 만들고 있었다. 보쿠토는 그 인간 벽을 뚫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조금만 빗나가도 꼴이 우스꽝스러워지기 십상인 고난도 스파이크를 멋지게 성공시킬 수 있었다. 보쿠토는 넘치는 활기와 자신감을 한껏 담은 눈빛을 아카아시에게 보냈다. 그 눈빛이 쉽게 달아오르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달굴 수 있도록.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는지 공을 향한 보쿠토의 열렬한 구애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카아시는 외면당한 채 열기가 식어가는 코트 한편으로 신속하게 공을 배달했고 코노하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언제나처럼 단호했다. 그 결과 후쿠로다니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명랑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에 공을 안 드려서 마음이 상하셨나요?”
“그, 그런 거 아니거든!”
“그렇군요. 하지만 하고 싶은 말씀은 있으신 거죠?”
아카아시는 경기에 승리했지만 보쿠토가 생각보다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서로 축하하며 흥에 겨워하는 모습은 다른 팀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평소의 보쿠토와 비교해본다면 차이가 명확했다. 지친 팀원들이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대부분 잠들었을 때 그 이유를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 때 공을 줬다고 해도 나는 성공시켰을 거야.”
삐죽 튀어나온 입이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지 짐작이 갔다. 아카아시는 구부러뜨린 손가락 마디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상대를 살폈다. 불쾌해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좋았고 굳이 속내의 부스럼까지 긁어모아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입을 열었다.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제가 맘에 걸렸던 건 이미 제 움직임이 읽혔다는 거였어요. 언제부턴가 선배에게 토스하는 게 습관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자제한 겁니다. 세트 업부터 읽히면, 곤란하잖아요.”
아카아시는 잠시 말을 이어가기를 망설였다. 이 말을 내뱉기 바로 전까지 그는 보쿠토가 분명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던가. 의심할 여지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왜 토스하지 않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무심코 속으로 계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공격이 성공했을 경우 보쿠토의 기분과 컨디션이 함께 상승하는 경우와, 느낌이 좋았지만 실패했을 때 보쿠토와 기분과 컨디션이 추락하는 것 사이에서. 도박을 해야 할 정도로 득점에 쫓기는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안전하게 가자고 타협했을지도. 이미 흐름을 읽어낸 네트 너머의 눈빛에 압도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네 생각은 잘 알겠어. 그 느낌 알 것 같단 말이지. 나도 읽히면 신경 쓰일 것 같고, 알게 모르게 든 습관을 나보다 먼저 간파한 녀석이 있다는 것도 맘에 안 들것 같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뭐, 감사받을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대단한 것도 아니라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 보쿠토가 보기 좋아서 아카아시는 편안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나 아카아시의 습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네?”
아직 끝나지 않은 보쿠토의 말이 뒤통수 너머로 들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먼저 눈을 돌렸기 때문에 표정을 보지 못했다. 반문하며 한 박자 늦게 돌아본 뒤에는 보쿠토도 다시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그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했지만 호기심을 풀 방법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군더더기에 침착하지 못했던 표정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보쿠토도 잠든 버스에서 나른한 느낌에 휩싸여 눈을 감자 벌써 페이지가 넘어간 습관 목록이 떠올랐다. 쓸데없이 자세하게 써내려간 항목을 곱씹으며 아카아시의 얼굴은 느리게 미소를 완성했다. 괜찮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쩌면, 당신을 위한 습관 하나 정도는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위압적인 상대에게 읽힌 습관을 지켜내게 만들어서 당신이 더 자신만만하게 코트를 박차고서 날아오르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습관이라면 몇 개 정도 몸에 배게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괜찮은 느낌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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