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빠르고 간단하게

 

 

맑고 화창한 날씨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그보다 더 다양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서서의 경우, 그는 맑고 화창한 날씨를 좋아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죽겠군. 머리도 아픈데 밖에서는 햇빛이 들이닥치고 꽃 냄새가 너무 강해서 토할 것 같아. 이런 날씨, 최악이로군.”

…….”

서서는 대답하는 대신 창밖을 내다보았다. 따사로운 햇볕이 아른거리면서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주변을 감싸 안고 있었다. 싱그러운 꽃향기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고개를 절로 돌리게 만들었다. 이보다 완벽한 날씨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았는데, 정작 지금 그와 함께 대청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불만이 많다.

그러니까, 점심을 그렇게 급하게 먹으니 그런 것 아닙니까.”

서서는 한숨을 쉬었다. 시끄럽군. 법정은 팔로 눈을 가리다가 햇빛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빛을 등지는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서서는 한가롭게 노니는 나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차라리 안에 들어가 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럼 탈 난 게 가라앉을지도 모르죠.”

됐어. 어차피 조금 있다 괜찮아질 것 같으니.”

그런가요? 서서는 뒤에 누워있는 법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상대는 귀찮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대답이 없었지만. 대답 없는 법정의 뒷모습이 신경 쓰였던 서서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다. 혹시, 만약에 대답을 못한 이유가 귀찮거나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탈이 난 배가 아파서 그런 거라면 자신의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여기서 햇빛이나 꽃향기 타령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의원에게 달려가 봐야 하는 게 맞을 텐데-

뭘 보냐?”

……멀쩡하시군요.”

법정은 뚱한 얼굴로,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쳐다보고 있는 서서를 쏘아보았다.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기척을 감지했지만 별달리 신경 쓰진 않았다. 다만 왜 이리로 온 것인지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뭔데?”

아뇨, 그냥……. 아까 대답을 안 하시길래.”

굳이 대답해야 되는 것도 아니었잖아?”

그야, 그렇긴 하죠.”

서서는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역시 그의 생각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해서 도저히 자신의 입장에서는 생각해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다른 사람에겐 자연스러운 경우가 빈번히 있었다. 그건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 서서는 조용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한가로운 시간이었지만 어째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식사를 좀 더 느긋하게 하는 건 어떨까요?”

시간이 아깝군.”

서서는 법정이 항상 식사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이 식사를 시작해도 먼저 일어서는 것은 언제나 법정 쪽이었다. 요즘에는 그것에 익숙해져서 굳이 속도를 맞추려고 하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에 쫓길 필요가 있나요?”

그럴 필요는 없지.”

법정은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그의 하품 역시 짧았다.

하지만 굳이 필요해서 모든 걸 하는 건 아니잖아?”

그 쪽이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군요.”

서서는 법정에게 다가갔다. 법정은 다시 그가 다가오자 누운 채로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다가올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서는 법정의 손을 잡았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에 법정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손에 땀이 찼는데. 제가 의원은 아니지만 손에 일정한 곳을 자극해주면 얹힌 게 내려간다고 하더라고요.”


법정은 다시 말이 없었다. 분명 아픈 건 내색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 서서는 그냥 웃기만 했다. 예전에 골목에서 아이들을 모아서 다닐 때도, 주변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보아도 꼭 그런 사람들이 한명씩 있었다. 아픈 걸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 이유야 서서가 상상할 수 있는 것부터 상상할 수 없는 것 까지 다양하게 있겠지만 아픈 걸 고치지 않으면 스스로만 고통스러워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좀 유심히 보게 된 것 같아서. 사람의 안색이라든가 말 이외의 것으로 전해지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말이다.

서서가 법정의 손을 주물거리는 동안 법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서는 법정의 손이 생각보다 부드럽다고 느꼈고 법정은 그 반대였다. 이 녀석, 정말 검을 오랫동안 잡았었군. 법정은 속으로 그렇게 읊조렸다. 그걸 바로 알 수 있는 손이었다. 혈을 짚는 것도 정확하고 단호해서 정말 얹혔던 게 시원하게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직접 인정은 하지 않을 테지만 그는 실력이 좋았다.

왜 그러시죠?”

넌 참 신기한 녀석이야. 예상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해야 할까. 종잡기 힘들다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어떤 땐 우스울 정도로 예측에 들어맞는단 말이지.”

다들, 그러지 않나요? 사람들은.”

법정은 그 말에 웃으면서 여기저기 혈을 짚고 있던 서서의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살짝 깨물었다.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일어난 일이었고 서서는 기겁하면서 손을 뺐다. 법정이 씨익 웃는 게 보였다.

그래도 역시 단단한 손도 깨물면 아프긴 한가보군.”

아니, 그게-아프기도 아픈 거지만……아니, 생각보다 그래도 아프진 않았습니다만, 근데…….”

지금 네 녀석이 입으로 뱉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당최 모르겠다.”

멀리서 말 우는 소리가 들리자 법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멀쩡하게 일어나서 정말 아팠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꾀병이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법정은 손가락 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서서에게 고갯짓을 했다.

빨리 가자고. 간단하게 해치워 버리자.”

서서는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도 그에게는 식사처럼 빠르고 간단한 것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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