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싫어하는 여자

 

 

 

 

오늘도 있군, 저 여자.”

히카르도는 익숙한 골목길을 돌며 중얼거렸다. 몇 주 전부터 항상 같은 곳에서 눈에 띄는 여자가 있었다. 감지 않아서 서로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위태롭게 난간도 없는 다리의 가장자리를 걸어 다닌다. 영문을 모를 타이밍에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갑자기 아무데나 주저앉을 때도 있었다. 이미 주변에서는 미친 여자라고 소문이 난 듯 했다. 그다지 위험할 것 같진 않아보였지만 그래도 순찰을 도는 구역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기 때문에 히카르도는 그 여자를 주시하게 되었다. 한번은 직접 말을 걸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히카르도가 다가가기 무섭게 여자는 그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저리 꺼져 이 더러운 벌레 자식아!”

그 말을 들은 히카르도는 피식 웃었다. 정신이 성치 않아도 말은 제대로 하는구나 싶었다.

 

 

말은 뭐 하러 걸었어?”

까미유는 영역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히카르도의 말을 듣고 단조로운 어조로 물었다. 딱히 다그치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까미유를 보며 히카르도는 왠지 변명을 해야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꼈다. 글쎄, 자신이 그 여자에게 왜 말을 걸었을까 떠올려보아도 딱히 어떤 생각을 하고 말을 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항상 보였기 때문에. 히카르도는 묵묵히 그냥 보이길래, 하고 대답을 마쳤다. 까미유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비가 내리는 창문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밖을 보곤 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까미유는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는 창문 바깥 세상에서 시선을 돌려 히카르도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쉽게 갖지 마.”

그렇게 말하고 까미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쩐지 그의 옆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히카르도가 조용히 까미유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 후에도 그 여자는 자주 거리에 나타났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상태는 점점 악화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게 다였지만 요즘은 지나가던 행인들에게도 시비를 걸었다.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 같은 여자를 보며 히카르도는 점점 오랫동안 여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까미유가 말했던 대로 자신이 그 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정신을 낫게 해 줄 수도 없었고 돈이 충분해서 부양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은 여자에게 괜히 시비를 걸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사람들을 주변에서 몰아내는 것 정도. 그렇게 여자 곁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그 여자와 문득 마주치게 되는 경우도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히카르도를 보며 외쳤다.

저리 꺼져 이 더럽고 징그러운 벌레야! 너 같은 거-!”

몇 번 그렇게 욕을 먹다보니 히카르도는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욕들은 대부분 벌레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벌레 때문에 미쳐버린 건가? 히카르도는 까미유가 창가에서 물었을 때처럼 괜히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사실, 벌레도 알고 보면 귀엽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미유의 말대로 그 여자에게 다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네 능력이 그녀에게 듣지 않을까?”

갑자기 무슨 말이야?”

히카르도는 수업을 마치고 막 교문을 나온 까미유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물었다. 까미유는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가 이내 이해하고는 표정을 찌푸렸다. 까미유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오랜만이어서 히카르도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까미유의 입은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다.

무리야. 내 능력은 그런 사람한테는 안 들어.”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

잘 알아.”

까미유가 단호하게 말했고 그가 화두를 바꿔서 더 이상 그 화제를 이어가기 싫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에 히카르도도 더 이상 보채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며칠 전부터 그 여자가 유난히 조용해졌다. 평소처럼 날뛰지도 않았고 사람들에게 충동적으로 시비를 거는 일도 없어졌다. 얌전하게 변해서 좋긴 한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점점 자신에게도 여자의 존재감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아예 사라져버린 여자를 생각하니 드디어 일이 닥쳤나 싶었다. 히카르도는 여자가 위태롭게 서성거리던 다리 아래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 곳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었다.

이봐!”

히카르도는 단숨에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갔지만 평소처럼 욕을 하며 내치지 않았다. 그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동자만을 히카르도 쪽으로 굴렸다. 여전히 혐오에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지 않았을 땐 느끼지 못했던 일말의 공포가 여자의 눈동자에 아른거렸다. 가래가 끓으며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다가오지 말라는 것일까? 히카르도가 바로 앞에서 멈칫하자 여자는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아무도 없는 다리 밑에 히카르도와 여자만 둘이 남게 되었다.

더러운벌레……징그러운무서워.”

히카르도는 끝까지 벌레를 욕하는 여자를 보며 사실 그 욕이 딱히 자신을 향해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는 허공을 바라보며 허우적댔다. 앙상하게 남은 가슴이 헐떡이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부여잡았다.

너 같은 거……낳지 않았더라면……좋았을.”

히카르도는 여자가 거기까지 말하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마지막으로 꺼져가는 생명을 몰아쉬며 그녀는 히카르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혐오와 공포로 가득한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까미유……너 같은 건.”

히카르도가 낯선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익숙한 이름이 놀랄 틈도 없이 여자는 곧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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