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

 

 "좀 쉬면서 하는 건 어때?"

서서는 달이 남쪽 하늘을 지나 서산을 넘어가도록 서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공명을 걱정했다.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묻긴 했지만 돌아올 답이 뻔했기 때문에 실상은 쉬라고 조금 강경하게 권하고 싶었다.

"오늘 낮에 낮잠을 잤잖아요? 그러니까 좀 더 읽어도 됩니다. 서형이야말로 지금껏 안자고 뭐하는 겁니까?"

"-불빛이 일렁거리면 잘 못 자."

"저번에 저희 집에서 머물렀을 땐 잘 잔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랬었나? 서서가 되묻자 공명이 낮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럼요. 서서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괜히 손으로 헝클어뜨렸다. 하긴, 저번에는 불 켜놓고 잘 잤던 사람이 밝아서 못 잔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이래서 언행일치가 중요한 건가 싶었지만 사람이 그걸 다 지키면 더 이상 사람같지 않을 것 같았다.

"잠은 밤에 자는 거지 낮에 자는 게 아닌데..."

"밤에도 잡니다. 좀 늦게 잘 뿐이죠."

"그러고 또 낮에 잔뜩 자버리고. 그럼 낮에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요즘 서형이 낮에 밭일을 도와줘서 참 다행입니다."

서서는 마치 남 일처럼 말하는 공명을 보며 낮게 신음했다. 공명은 밤에도 마치 신난 강아지처럼 쌩쌩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서산으로 해가 지기 무섭게 잠자리에 들고 새벽녘에 일어나곤 했는데 요즘은 서책을 읽느라 취침 시간이 조금 늦춰지긴 했다. 하지만 옛날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사실상 공명과 거의 겹치는 활동 시간대가 없었다. 서서는 그 점이 아쉬웠다.

"낮에 자고 밤에 책을 읽느니 낮에 책을 읽고 밤에 자는 게 어때?"

"조삼모사가 생각나는군요. 어차피 별반 다를 거 없잖습니까?"

서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점점 눈이 감기는 것을 애써 저지하고 있었다. 잠과 치르는 공성전같은 느낌이었다. 공명이 잔뜩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 채 졸린 눈으로 제 쪽을 보고 있는 서서를 보고 말했다.

"서형,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그러고 있으니 애처로운 강아지 같아요. 안자고 보고 있는다고 제가 잠들진 않을 겁니다."

으음. 서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른거리던 초롱불을 훅 불어서 꺼뜨렸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어둠 속에서 공명이 물었다. 이렇게 하려고. 서서는 공명을 냉큼 안아 올려 침상에 눕혔다. 어리둥절해하며 당황하고 있을 공명의 얼굴을 낮처럼 선명하게 볼 수 없다는 건 아쉬웠다. 서서는 침상 안쪽으로 공명을 밀어 넣고 자신은 바깥쪽에 걸터 누워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까 조삼모사라고 했지만 사실은 절대 조삼모사가 아니야. 다르다고. 낮에 너랑 대화를 더 할 수도 있고 그리고 밤에는 이렇게, 같이 누워서 달도 볼 수 있어."

서서는 점점 감기는 눈가에서 공명이 한숨을 쉬며 돌아눕는 것을 보았다. 역시 서형은 아무리 봐도 강아지 같아요. 몸집이 큰 강아지. 뭐 그럴 수도 있지. 서서는 공명의 등에다 대고 늦은 인사를 했다.

잘 자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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