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생긴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하지만 매번 앞서 나가는 형과 비교당하는 것이 싫었던 마커스
어느 날 그에게 다니엘을 추월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스팁다니 기반으로 진행되는 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마커스가 다니엘과 일란성 쌍둥이이며 형사라는 동인 설정이 있습니다*
*자작 인물이 등장합니다*
*커플링 성향은 옅습니다*
*퇴고 시 목차 제목 및 문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용 변화는 없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양보했던 아이
1. 운 나쁘게 찾아온 기회
2. 통화 중에 얼굴은 보지 못한다
3. 복수하는 혈계의 권속
4. 심야 통화
5. 거울에 비치지 않는 세계
6. 한 곳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
에필로그. 배타적인 위로
양보했던 아이
일란성 쌍둥이 형제 사이에서 형과 동생을 나누는 건 좀 웃긴 일이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갈라져 나온 뒤 쭉 함께 성장했던 형제 중 한 명은 분명 한 명밖에 지나갈 수 없는 통로에서 양보를 했다. 어차피 일분 차이니까 뒤를 쫓아가는 건 금방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때 양보를 했던 아이가 동생이다,
내게는 나보다 일 분 먼저 세상에 나온 쌍둥이 형이 있다. 우리는 부모님이 미리 지어놓았던 다니엘과 마커스라는 이름을 차례대로 받았다. 형이 다니엘이었고, 나는 마커스였다, 성은 로(Low)였고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이름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종종 우릴 로 형제라고 불렀다.
다니엘과 내가 로 형제라고 뭉뚱그려진 데에는 단순히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체격이 비슷한 형제에게 항상 같은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셨다. 사실 나와 다니엘은 취향이 상당히 달랐다. 처음에는 나도, 다니엘도 서로 좋아하는 게 다른지 몰랐기에 옷은 순전히 부모님 취향에 따라 선택되었다. 다니엘이 좋아하는 옷일 때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옷일 때도 있었다. 주황색 후드 티는 둘 다 좋아했지만 한 벌씩 밖에 없어서 학교에 입고 가는 날은 극히 적었다. 동일하게 한 벌이었지만 둘 다 싫어하는 갈색 악어가 배 위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티셔츠일 때는 그보다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긴 했다.
여하튼 나와 다니엘은 항상 같은 옷을 입었지만 다니엘은 입는 옷에 까다롭지 않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옷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보이든 편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라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래서 등교하기 바쁜 아침에 옷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칭얼대는 건 항상 내 몫이었다. 다니엘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같이 싫어해줬다면 어머니도 옷을 바꿔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이 입고 아무런 불만이 없었기 때문에 쌍둥이 동생인 나도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했다.
그렇게 형 때문에 원치 않는 옷을 입고 등교하면 같은 반 애들이 로 형제라고 불러도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는 것도 내 쪽이 되었다. 아침마다 다니엘은 나를 달래서 학교에 가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없어져도 상관없을 외침을 굳이 붙잡아 대답했다. 그는 그러는데 딱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그는 당돌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는데도 내 주변에 있는 거의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돌하지만 어이없는 빈틈도 많았는데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다니엘에게 먼저 의견을 묻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먼저 다니엘을 불렀다. 나는 다시 그에게 기꺼이 양보했고 내 차례는 언제나 다니엘, 그 다음이었다.
다니엘은 내게 너무 잘 대해주었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그랬듯이 나는 양보를 잘 하는 작은 아이였는데,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쉽게 이용당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조나단이 특히 심했지만 옆 반 학생인 다니엘이 찾아와서 턱에 주먹을 날려버렸다. 후에 조나단이 비죽이며 말하길 다니엘이 달려올 때까지만 해도 나인 줄 알았다고 한다. 조나단에겐 안타깝게도, 다니엘은 나처럼 작았지만 주먹이 셌다. 그래도 한 번 세게 갈긴 주먹에 피가 묻었을 땐 그도 좀 당황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반격을 당해서 꼴사납게 교실 바닥을 뒹굴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어릴 때 나는 그가 보여주는 등을 좋아했다. 그의 넓은 등은 내가 보기 싫어하는 광경을 확실하게 가려주었다. 그래서 그 앞에 뭐가 있는지 깨닫는 데까지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다니엘은 경찰이 되고 싶어 했다. 특히 가장 악랄한 악당으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 다운 선택이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도 경찰이 되고 싶었는데 말하는 게 한 발 늦었다. 절대 형이 꾸던 꿈을 함께 좇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단지 나는 학생 시절에 약한 사람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 충분히 공감할 기회가 많았고, 그런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모습을 동경했기 때문에 경찰이 되길 원했다. 아주 오랫동안 맘속에 품어왔지만 말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나는 그 시기에 속으로 경찰이 되는데 어울리는 모습을 은연중에 정해놓고 있었는데 그 모습과 난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부모님께서도 다니엘과 달리 나는 경찰이 되기엔 너무 약하다는 말만 했다. 퇴역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이제 그만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차마 대꾸도 못하고 웃기만 했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그 때는 내게 있어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심지어 다니엘조차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몇 번을 회유해도 실패하자 부모님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나는 경찰이 되기 위해 형과 함께 뉴욕시 경찰 시험에 지원서를 냈다. 그 결과, 다니엘은 한 번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난 체력검사 합격 기준에 미달돼서 재시험을 두 번 치렀다. 첫 번째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포기해버린다면 너는 정말 다니엘을 따라가려고 했던 철없는 동생이 되어 버린다고.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해서 처음 출근했을 때는 형이 이미 여기저기 자랑을 해놨던지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 중 열에 아홉은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네가 다니엘 동생이냐? 진짜 똑같이 생겼네. NYPD에 온 걸 환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초반에는 다니엘 동생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마커스라는 이름을 동료와 상사에게 각인시키는 건 힘들지 않았다. 이미 직무에 완벽하게 적응한 다니엘과 다르게 난 일처리도 엉망이었고 수월하게 끝낼 사건도 하나씩 꼬이게 만들었다. 들어온 시기에서 차이가 났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똑같은 두 형제를 여전히 한 세트로 보기로 한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익숙해져버린 그런 시선을 깨달을 때마다 나도 곧 그를 따라잡아 주겠다고 다짐했다. 뒤처진 사건 해결율도, 인사고과도 전부 만회해주겠다고 외친 뒤에야 밤에 눈을 감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났다.
인류는 맨해튼이 붕괴되고 헬사렘즈 로트라는 기괴한 도시가 들어선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들이 뉴욕에 나타났고 맨해튼은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아무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에 갇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공포스러워했다. 미지의 세상에 아무런 보호벽 없이 갇힌다는 건 그랬다. 다행히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비록 아주 좁은 길이었지만 빠져나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니엘은 이곳을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보기에 헬사렘즈 로트야말로 가장 경찰이 필요한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도 그와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도시에 남기로 했다. 이때도 부모님은 내가 경찰이 되겠다고 했을 때처럼 말렸다. 다니엘도 이제 더 이상 내 편은 아니었다. 그는 내가 부모님과 함께 도시 밖으로 나가길 바랐지만 거절했다.
너는 꿈을 꾸고 원하는 길을 가는 게 그토록 자유로운데 난 어째서 항상 그걸 증명해 내야하는 것일까? 단지 네 다음으로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헬사렘즈 로트가 막 출현했을 땐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지구에 새로 온 주민들, 이계인들은 인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인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혈계의 권속이라는 엄청난 놈들까지 튀어나왔다. 아직 알려진 건 거의 없었지만 혈계의 권속은 인류를 훨씬 웃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이 세상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난데없이 뉴욕이 붕괴되고 헬사렘즈 로트가 나타난 것도 그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누군가의 입을 타고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온 세계의 정부가 그 존재들을 찾아 헤맸지만 그들에 관한 정보는 오직 소수만이 독점했다. 일개 형사들은 그런 기밀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그 일개 형사였던 다니엘은 놀랍게도 그 경쟁에서 앞서나갔다. 그는 내가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를 어디선가 주워왔다. 다니엘은 곧 누구보다도 헬사렘즈 로트의 사정에 빠삭한 형사가 되었고 기동력으로는 종종 연방수사국보다 앞서곤 했다. 발 빠른 활약에 힘입어 다니엘은 고속으로 승진했고 이제는 경감이 되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쌍둥이 형제 사이에서 형과 동생을 나누는 건 좀 웃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합당하게까지 느껴진다. 다니엘은 나와는 달랐다. 그는 내게 양보 받은 게 아니라 어쩌면 제친 것일지도 모른다. 단 일 분 차이로 세상에 나왔던 쌍둥이 형은 사실 시작 지점부터 나보다 앞 서 있었던 것이다. 사소한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벌어져서 학교에 들어갔을 땐 따라잡기 벅찼고, 헬사렘즈 로트가 출현하고 난 후에는 이제 내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나와 다니엘은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똑같았지만 서 있는 곳은 단 한 번도 겹친 적이 없었다.